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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적끄적

'어린 왕자'와 '미스터 션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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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 선생의 책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에는 '『어린 왕자』의 번역에 대한 오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마흔네 번과 마흔세 번, 소행성 325와 소행성 3251, 숫양과 염소'의 번역 차이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것이 국내에서 일본어판을 중역한 것이기 때문에 생긴 '오류'라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 내지는 해명의 글이라 할 수 있다. 생텍쥐페리가 미국에 머물던 1943년 프랑스어와 영어로 처음 발간된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글에서, 황현산 선생님은 "1960년에 『어린 왕자』를 처음 한국어로 발간한 안웅렬 교수나 그 이후의 선구적 번역자들이 '소행성 3251'이나 '마흔세 번'을 쓰게 된 것은 일본어판에 의지해서가 아니라 원문에 충실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한다. '염소'와 '숫양'의 표기에 대해서는, 'mouton, brebis, belier'로 양, 암양, 숫양에 해당하는 독립된 단어가 있는 프랑스어와, 목축 국가가 아닌 한국어에서 양에 암수를 구별하는 표기를 붙이는 것의 차이를 언급한다. "어린 왕자가 비행사에게 '양을 한 마리 그려달라'고 할 때, 그 양은 mouton이지만 그가 퇴짜를 놓은 것은 belier다." (...) "한국의 번역자들이 일본의 번역자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 같은 언어적 운명 앞에서 같은 선택을 한 것일 뿐이다."(책 166쪽) 이 글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어린 왕자』에서 여우가 전하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저마다 직면했던 운명과 그 선택을 깊은 자리까지 뜯어보아야 한다는 뜻도 된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대한 감상을 쓰면서 온라인상의 일부 반응들을 살피던 중, 자연스럽게 선생의 글을 떠올렸다. 결론부터 당겨 적자면 작년 <군함도> 때도 그렇고, 이 드라마도 그렇고 나는 여기에 '친일미화' 내지 '식민사관', '역사왜곡' 같은 단어들을 끼워 넣는 건 표현에만 몰두해 정작 숲을 살피지 않는, 흐름과 맥락을 놓치는 행위라고 볼 따름이다. 그러니까 그 흐름과 맥락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현상만 볼 게 아니라 그 이면을 헤아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라를 생각하지도 않고 착하지도 않은 조선인이 작품에 등장하거나 그가 어떤 행동을 하거나 어떤 단체에 소속돼 있다고 해도, 그 사실 자체는 작품이 조선 혹은 조선인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시선과 태도에 관해 설명해주지 않는다. 고증의 세밀한 정도나, 실제 역사와의 차이를 짚는 것은 타당할 뿐 아니라 생산적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저마다 직면했던 운명과 그 선택을 깊은 자리까지 뜯어보기' 위한 시도나 노력 없이, 무조건적이고 완전무결한 '정치적 올바름'만을 강요하는 일에는 선뜻 동조하기 어렵다. 이 드라마 역시, 시대가 주인공이지만 결국은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살아내었던 아무개들을 향하고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미디어와 문화 콘텐츠의 (잠재적) 영향력보다 대중 혹은 시청자 혹은 관객, 각자의 주체적 감상과 사유다.


(2018.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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