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문 관객일수록 더 뚜렷한 주관이나 견해를 전문화된 언어나 구체적이고 상세한 분석을 담아 표현하는 사람에 가깝다'는 언급을 문제 삼으시는 건가요. 영화 기자나 평론가가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제 생각과 아는 바를 적은 이 말은 "전문적이고 지적인 표현이 좋다"는 말과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말씀하신 표현의 자유가 기자/평론가의 직업의식과 자질을 함부로 평가해도 될 만큼 방만하고 대단한 것인가요. 당연히 자기 할 말 할 수 있죠. 영화 별로였다고 말할 수 있고 그 영화 보지 말라고 주변에 떠들 수도 있죠. 그러나 "표현의 자유"라는 건 기본적으로 책임과 존중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자유가 주어졌다고 해서 "아무 말이나 해도 된다"라고 할 수 있나요? 제대로 된 비판이라면 모를까. 님께서 악플을 썼다는 게 아니라 그런 식으로 자기 자유를 외치는 많은 댓글들이 나아가 그 자유의 범주를 침범하는 순간 악플이나 다름없게 됩니다. 저는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상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을 존중할 생각이 없는데, 이건 제 생각이 정답인 게 아니라 대화와 토론이라는 것을 위한 최소한의 마음가짐일 뿐이라서 그렇습니다. 대화하고 싶고 이야기 나눌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굳이 대화의 자세가 안 되어 있는 사람들까지 챙길 여력은 없고 제 능력이 그만큼도 되지 않아서요.
2. 표현법의 차이 말씀입니까. 넷플릭스가 <승리호>에 대한 씨네21을 "돈 주고 샀다", 씨네21 기자들이 돈을 받고 "<승리호>의 평을 좋게 써줬다"라고 그렇게 확신하실 수 있습니까. 본인이 영화를 어떻게 감상했는지는 그것의 근거가 전혀 되지 않습니다. 저도 물론 확신은 하지 못하죠. 기자/평론가 분들이 영화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직접 들은 것도 아니고 씨네21 매체 온라인에 게재된 시사회 후기 글이나 곧 지면으로도 나오게 될 리뷰나 비평 말고는 파악할 수 있는 단서가 없으니까요. 그러니 저는 20자 평을 가지고 그 사람과 그 사람이 소속된 매체를 재단하기보다 그 사람에게 직접 질문을 하거나 그 사람(들)이 추후에 게재할 긴 글/리뷰/비평/혹은 팟캐스트/유튜브 등을 통해 그들이 하는 말 등을 가지고 한 번 더 생각해볼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도 마음에 걸리는 게 있고 동의할 수 없는 게 있다면 제가 표현할 수 있는 언어로 그것을 표현할 것입니다. 거기에는 메시지에 대한 반론은 있을지언정 메신저에 대한 폄하가 개입될 여지는 없을 것입니다.
3. 저는 대략 4년 정도 영화 매체와 영화 마케팅 에이전시를 거쳐 영화업계에 종사했고 국내외 영화가 개봉하기까지 제작/수입/배급사의 역할과 영화 매체의 역할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각기 이루어지는지 상세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제 상식 선에서는 "씨네21 기자분들은 넷플릭스가 돈을 줘서 평을 좋게 쓴 게 아니라 그냥 기자분들 각자가 영화를 좋게 본 것"이라고 거의 확신에 가깝게 말할 수 있습니다. <반도>와 이동진 평론가 이야기도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아주 정확히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아무리 씨네21이 국내에서 영향력 있는 매체라고 해도 영화주간지에 실리는 별점과 한줄평이 영화 흥행을 결정적으로 좌우하지 않는다는 점도 8년 동안 매주 박스오피스를 지켜봐 왔고 국내외 영화계 뉴스들을 탐독해 온 사람으로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점입니다. 이 영화가 예를 들어 극장 개봉작으로 치면 1~2만 명만 봐도 기적에 가까울 만큼의 아트하우스 영화였다면 모르죠. 그러나 상업영화가, 그것도 전 세계 1~2억 명이 넘는 시청자들에게 동시 공개되는 대작이 굳이 일개 영화 전문지의 평에 의해 영화의 성패가 좌우되지는 않습니다.
4. 그리고. 공격이라고 하셨나요. 공격은 적어도 여기 쓰인 몇몇 댓글 작성자 분들이 씨네21이라는 매체와 씨네21에 종사하는 기자분들의 취향과 직업윤리를 공격했다는 사실이 먼저입니다. 제가 쓴 댓글은 공격이고 여기 매체와 기자/평론가들에게 덮어놓고 아무 근거 없이 반감을 표출하는 댓글은 정당한 표현의 자유인가요. 그건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인신 공격이고 비판이라고 착각한 비난 내지 조롱입니다. 마찬가지로 비판과 비난을 구분하지 못하는 태도도 저는 별로 존중할 여력이 없고요. 저는 위 씨네21 기자분들과 친분도 없고 (당연히, 친분이 있고 없고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만.) 제가 해당 매체에 종사하는 것도 아니기에 이것도 누군가에겐 오지랖이고 누군가에겐 주제넘는 일일지도 모르죠. 저는 비평의 역할이나 영화 주간지의 역할을 논하기 전에 기본적인 존중의 자세를 말하고 있습니다.
5.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영화를 제가 어떻게 봤는지는 본 매체의 20자 평과 별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금일 오후 중에 이 영화를 봤고 나름의 단평도 남겼으며 곧 긴 리뷰도 쓸 예정입니다만, 제가 영화를 좋게 봤든 어떻게 봤든 간에 위와 같은 생각은 변함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의 감상 내용 자체를 문제 삼을 생각이 없고 그럴 여력도 없습니다. 제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승리호>는 이렇게 봐야 한다 따위의 말을 하겠습니까. 당연히 <승리호>가 누군가에게는 아주 폐기물 같은 영화일 수도 있죠. 거듭 말씀드리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다른 사람의 감상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기자나 평론가 역시 한 사람의 관객입니다. 누군가 덮어놓고 자기 감상에 대해 "평점 알바"로 폄하한다면 그걸 표현의 자유로 인정해줘야 합니까? 도대체 왜 그걸 인정해야 하죠? 왜? 그 자유는 누구의 권한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죠? 스스로 그걸 부여하나요? 태도가 그걸 만듭니다. 아무리 날 선 비판이어도 태도는 그걸 납득할 수 있게 해 주거나 동의하지 않더라도 한 번쯤 귀 기울여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취향 존중을 외치면서 다른 사람의 취향은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인스타그램이든 유튜브든 댓글에서 매일 허다하게 봅니다. 기자/평론가가 쓴 한줄평이나 리뷰나 비평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의 주관이나 근거를 가지고 그 내용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반론할 수는 있겠죠. 그러나 그게 무슨 영화이든 간에, '돈 받았냐' 같은 건 제 기준에서 존중하고 싶지 않은 비난("비판"이 아니라)이고 조롱이고 비아냥일 뿐입니다. '아니면 말고' 식의 코멘트도 마찬가집니다.
6. 끝으로, '좋은 태도와 상식과 언어력'이라는 표현도 문제 삼으시는군요. 계급화요? 계급을 왜 나눕니까. 저는 어느 문학평론가가 말한 "더 좋은 해석과 덜 좋은 해석의 차이"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쪽이긴 합니다만 그게 계급의 문제는 전혀 아닙니다. 태도의 문제죠. 덮어놓고 감독과 친분 있냐 알바냐 돈 받았냐 하는 사람이 영화를 수 천 편을 봤고 대단한 식견과 취향을 가지고 영화 역사를 관통하는 철학을 가진 사람이라 해도 저는 그런 사람과는 단 1분도 대화하고 싶지 않습니다. 영화를 살면서 스무 편 밖에 안 봤어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각도로 찾아보고 자기 생각과 다른 관점이나 외부 견해를 경청하는 사람과는 24시간도 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건 즐거울 뿐 아니라 생산적이고 유용하기까지 하거든요. 물론 누군가는 어떤 영화가 너무 좋았거나 너무 별로였어서 좋았다거나 별로였다는 표현 외에 다른 걸로는 대신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살면서도 때로는 '너무 좋다' 같은 감탄사가 앞서는 순간도 많이 있죠.
7. 그러나 요지는, 지적해주셨다시피 다른 사람의 감상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의 감상은 굳이 존중해 줄 의사가 없다라는 것이고 저는 그게 태도의 문제라고 명확하게 생각합니다. 네. 내용보다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만약 이 영화가 제게 아주 쓰레기 같았다고 해도 그냥 제 생각이 어땠는지를 말하고 기자/평론가의 평을 찾아보고 난 뒤 제 생각과 달랐던 것을 제가 전할 수 있는 말과 글로 제 언어력에 충실해서 표현할 것입니다. 제 생각과 달랐다고 해서 기자/평론가의 자질을 문제 삼지는 않을 겁니다. 그게 제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대화를 위한 태도이고 상식입니다. 네. 누군가는 제 얘기도 아닌데 무슨 정의의 사도라도 된 것처럼 굳이 끼어들어 광역 어그로를 끄는 것을 문제 삼을 수 있고 지적/공격하실 수도 있겠죠. 다만 지금까지 길고 긴 댓글로 긴 시간을 들여서 쓴 게 8년 동안 영화에 대해 글 써왔고 앞으로도 평생 글 쓸 사람으로서 가지고 있는 생각이며 "매체 기자/평론가들의 평점과 한줄평을 폄하해도 된다"라고 하는 주장의 납득할 수 있는 이유와 정제된 견해라도 가져오지 않는 한 저는 굳이 철회할 생각 없습니다. 네. 경청할 만한 비판이라면 얼마든지 표현의 자유가 될 수 있겠죠. 물론 사람을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 사람 수만큼의 언어가 존재하고 그 언어의 종류만큼이나 다양성과 개성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저는 살면서 제가 경험할 수 있는 인간관계와 생각의 한계로 인하여, 제 시야와 경험이 미치는 범주 내에서 간신히 거기에 미치는 사람들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거기에 상호 존중과 배려가 결여된 사람은 포함하지 않을 것이고, (당연히 이것도 정답인 게 아니라) 제 상식 선에서는 타인의 직업을 폄하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것마저 누군가에겐 공격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은 저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만. 저는 제가 지적한 댓글들에 맞서 길고 긴 이야기를 이렇게 쓴 게 제 표현의 자유를 벗어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동의하시라고 쓴 것도 아니고 그럴 의사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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