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 크레디트를 보면서 '불과 전에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음악을 접했는데 이 영화 음악으로 또 만나다니!' 같은 감탄을 하며 지난 경험을 기억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지만 <더 파더>(2020)는 영화를 보는 내내 기억이 아닌 망각에 관해 상기하도록 이끈다.
'안소니'(안소니 홉킨스)에게 어떤 이가 "화창할 때 많이 걸어 다녀야죠, 화창한 날씨는 오래가지 않으니까."라고 말한다. 붙잡으려 해도 손아귀를 빠져나가고 어느 순간 다 흘러가고 다 떠나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생의 망연한 순간이, 대단한 잘못을 한 것도 잘못 살아서도 아니고 단지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로 찾아온다. '안소니'는 영화 내내 몇 번이나 손목시계를 찾지만 그는 시간을 제 손안에 넣을 수 없다.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이며 어제 무엇을 했고 오늘 아침에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같은 일들이 그의 세계에서 하나 둘 사라져 간다.
'A'가 아닌 'The'를 쓴 영화의 제목은 '안소니'만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마치 불가항력의 거스를 길 없는 순리를 가리키는 듯 읽히기도 한다. 한쪽에서 무엇인가를 기억하고 붙잡으려 애쓰는 동안 또 다른 생의 어떤 면은 그것을 계속해서 잊어버리고 흘려내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 지금이 다른 어떤 순간과 같지 않은 바로 그 지금임을 생각하는 일과 그것이 주는 감각을 산책하는 일 정도겠다. 자신이 쓴 희곡을 영화화 한 플로리안 젤러의 <더 파더>는 관객의 기억에 혼란을 가져오는 방식으로 주인공의 내면에 보다 생생히 접근한다. 끝에 남는 어떤 쓸쓸한 풍경을 향해 창을 열어젖히는 그 순간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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