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과 기둥으로 된 전통적 의미의 집(House)을 포기한 채 계절성 노동으로 캠핑카의 연료를 채우며 석양을 바라보는 사람들. 중산층이라는 아메리칸 드림이 어려운 꿈에서 불가능한 꿈으로 바뀌어가는 시대에 노매드가 되기를 택한 사람들에게서 <노매드랜드>(2020)는 애써 낙관을 발견하려 하는 대신 그들의 삶 자체를 곁에서 지켜보고 한걸음 물러나 관조한다. '남들처럼'에 자기 삶의 양태를 맞춰야 할까? 그렇지 않은 삶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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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이 보잘것없고 가능하지도 않다고 여겨질 때, 질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잠자리에 드는 것이 문득 막막하고 두려울 때. <노매드랜드>를 떠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 영화를 만나고 난 뒤 일렁이는 생각들이 그때 가서 어떤 식으로든 중요한 의미가 되어 있을 것 같아서. 이런 이야기를 쉽게 만나지 못하리라는 확신 같은 것이 들어서. <노매드랜드>가 포착하는 광활하고 깊은 풍경과 그 안의 사람들 - 펀, 데이브, 스왱키, 린다, 밥, 그리고 모두 - 의 얼굴과 목소리들, 그들이 여전히 저마다의 안식처(Home)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유하고 아름다웠는지 말하기 위해서라면 그게 시네마가 주는 경이였다고 할 수밖에. 내러티브를 만드는 작법만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와 세계를 반영하는 시선만으로도 이야기는 깊어질 수 있다. (★ 10/1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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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른 누구에게나 그렇듯, 그들에게도 생존이 전부는 아니다. 그래서 필사적인 노력으로 시작된 것은 좀 더 위대한 무언가를 외치는 함성이 되었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최소한의 생활 이상의 무언가를 열망하는 일이다. 우리에게는 음식이나 거주지만큼이나, 희망이 필요하다.
그리고 길 위에는 희망이 있다. 그 희망은 앞으로 나아가는 힘에서 생겨나는 부산물이다. 이 나라 전체만큼이나 넓은, 기회의 감각. 뼛속 깊이 새겨진, 더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신념. 그것은 바로 앞에, 다음 도시에, 다음번 일자리에, 다음번 낯선 사람과의 우연한 마주침 속에 있다."
-제시카 브루더, 『노마드랜드』(엘리, 서제인 옮김,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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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영화들이 극장 개봉을 미루거나 포기하고 극장에서 신작을 만나는 일이 더욱 소중해진 2021년, 클로이 자오의 <노매드랜드>(2020)는 내게 2021년을 통틀어 가장 보고 싶은 영화였고 국내 개봉 소식에 기뻤으며 4월 중순 개봉을 앞두고 있다. 모든 것을 잃은 뒤의 삶에서 희망은 어디서 비롯할까. 포기하지 않고 조금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이야기의 오늘은 대부분 불가항력적으로 무너져 내린 폐허 위에 있다. 그런 데도 가까스로 지어 보이는 엷은 미소, 석양을 응시하는 굳은 얼굴과 등불 하나를 쥐고 내딛는 걸음들. 영화 <노매드랜드>의 예고편을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그 벅참처럼, 그 원작이 된 논픽션을 들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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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매드랜드>는 제77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제45회 토론토국제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있다. (4월 15일 국내 개봉 예정)
*클로이 자오는 <이터널스>(2021)의 감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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