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파더>는 현재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대표적인 영화 시상식으로 꼽히는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상인 작품상을 포함해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각색상, 편집상, 미술상 후보로 올라 있는 작품이다. 국내에는 지난 4월 7일에 개봉.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제가 생각한 이 영화의 특징과 우리가 기억할 만한 이야깃거리들을 짧게 풀어봐야겠다.
일단 외적으로 다룰 수 있는 것이 굉장히 많이 있다. 배우 이야기부터 할까. 영화의 주인공 '안소니' 역을 맡은 안소니 홉킨스(1937~)는 빼놓을 수 없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명배우 중 한 명이다. 1992년 <양들의 침묵>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2003년 할리우드 명예의 전당 헌액, 2006년 골든글로브 평생공로상을 수상하는 등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카리스마 있으면서도 신뢰를 주는 연기가 일품. 가즈오 이시구로 소설 원작의 영화 <남아있는 나날> 역시 추천하고 싶다. 플로리안 젤러 감독의 영화 <더 파더>에서는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인 '안소니'를 연기했는데, 배우의 이름과 영화 속 캐릭터 이름이 같다.
'안소니'의 딸 '앤'을 연기한 올리비아 콜먼 역시 빼놓을 수 없겠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2018)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일대기를 다룬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크라운>에서 중년의 엘리자베스 여왕을 연기하기도 했다. 영화 <미나리>(2020)의 배우 윤여정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라 있는데, <더 파더>의 올리비아 콜먼 역시 같은 부문에 후보로 올라 그 수상 여부가 주목된다.
안소니 홉킨스와 올리비아 콜먼 둘 다 영국 배우다. <더 파더>를 연출한 플로리안 젤러 감독은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극작가로 영화 <더 파더>의 원작 연극을 자신이 썼다. 자기가 쓴 연극을 영화로 직접 옮긴 것. (영국의 시나리오 작가 크리스토퍼 햄튼과 함께 각색을 했다) 해당 연극은 우리나라에서도 2016년에 배우 박근형의 주연으로 무대에 세워지기도 했다. 최근에는 국내에 책으로도 번역이 되어 출간이 되었다.
치매에 걸려 기억을 잃고 있는 노인에 대한 영화라고 하면 어떤 것들을 연상하게 되는지. 국내외를 막론하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치매가 소재로 등장하거나 그것을 겪게 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많은 경우 그러한 작품들이 치매를 다뤄온 방식은 치매에 걸려서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는 어떤 사람을 지켜보는 가족이나 주변인의 시선이 중심이 된다.
<더 파더> 이야기와 잠시 논외로, 픽션으로 어떤 상황을 가정해볼까. 성공한 커리어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한 사람이 있다. 어떤 대학의 굉장히 존경받는 명예교수라고 해볼까. 영화의 시작은 평범한 일상이다. 가족과 식사를 하거나 아니면 친구들을 만나거나, 혹은 강의를 하러 가거나. 그런데 평소처럼 강의를 하고 있는데, 수업을 하다가 중간에 갑자기 어떤 내용이 기억이 안 난다. 뭘 설명하고 있었더라? 당황한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이 나고, 그 상황은 별 일 없이 넘어간다. 며칠이 지난다. 또 강의를 한다든지 아니면 가족과 대화를 하고 있는 상황. 예를 들면 그날이 딸의 생일이었는데 생일인 걸 축하도 안 해주고 선물도 안 샀다든지, 혹은 분명히 어제 했던 이야기인데 자기만 기억이 안 난다든지. 그런 식으로 단순한 건망증 정도가 아니라 마치 기억에 구멍이 생긴 것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 마침내 병원에 갔더니, 치매라고 진단을 받는다. 본인은 물론이고 주변에서도 슬퍼하는 모습이 그려지며 시간이 지나 자신이 누구였는지도 서서히 잊어간다.
자신이 치매에 걸리지 않는 한 우리는 조부모 혹은 부모, 그 외 친인척이나 지인 등 다른 사람이 치매에 걸린 이야기를 듣거나 그것을 가족의 입장에서 겪게 된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많이 만들어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인 것으로도 볼 수 있는데, 영화 <더 파더>는 그런 것들을 거의 대부분 빗나간다.
영화 첫 장면은 딸인 '앤'이 나온다. 영국 런던의 거리를 걷고 있다. 고급 주택들이 보이는 부촌. 바쁘게 걸음을 재촉해 들어간 집에는 아버지 '안소니'가 있다. '안소니'가 자기 손목시계를 찾는다. 간병인이었던 사람이 최근에 그만뒀는데 그 사람이 훔쳐간 것 같다는 등의 말들을 한다. '앤'이 원래 시계를 욕실 선반 위에 잘 숨겨두곤 하지 않느냐고 하니까 '안소니'가 그럴 리가 없다고 하고, 그러다가 '아 그랬나?' 하기도 한다. 한 가지 대화 상황이 더 있다. '앤'은 자기가 새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여러 일들로 런던이 아니라 이제 파리에 가서 살게 될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를 자주 찾아뵙기 어려우니 새로 간병인을 구해주겠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안소니'는 슬쩍 방으로 들어간다.
곧이어 다음 장면에 가면 '안소니'가 잠을 좀 자고 일어나서 잠옷을 입은 채로 거실로 나가자 소파에 왠 낯선 남자가 앉아 있다. 그 남자는 자기를 알아보는데 '안소니'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보지 못한다. 혼란스러운 표정의 '안소니'를 보며 그 남자는 자기가 '앤'의 남편이라고 하며, 곧 '앤'에게 전화를 한다. "몸이 좀 불편하신 것 같은데 당신이 좀 와주면 좋을 것 같다"라고. 조금 후에 마트에서 장을 봐온 '앤'이 들어오는데 우리(관객)가 조금 전에 봤던 그 올리비아 콜먼의 얼굴이 아니다. '안소니'는 또 한 번 혼란스러워진다.
초반 흐름만 약간의 사실 관계나 컷과 신 흐름을 일부 건너뛰어 대략 설명했다. 영화 <더 파더>는 이렇게 관객의 심리까지도 혼란스럽게 만드는 탁월한 드라마이기도 하다. 조금 간단히 거칠게 말하면 치매를 겪는 인물을 주변인의 시점에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이를테면 거의 1인칭에 가깝게 '안소니' 본인의 시점인 것처럼 묘사를 하는 것. 우리는 이 '안소니'가 보는 것과 거의 같은 정보를 관객으로서 보게 된다. '아, 첫 장면에 나온 이 여자가 '안소니'의 딸이구나.' 딸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런던에서 파리로 떠나게 되었고 새로운 간병인을 구해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 장면에 가면 얼굴이 전혀 다른 낯선 사람이 자기가 딸이라고 하고, 새로 애인이 생겨 파리로 간다는 사람이 사실은 런던에 남편과 같이 살고 있다. 심지어 지금 관객이 보고 있는 이 집은 '안소니' 집도 아니고 '앤' 부부 집에 얹혀살고 있는 거라고도 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이미 '안소니'가 치매에 걸려 있는 채로 시작된다. 보통의 이야기는 스토리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전의 여러 상황들이 있다. 집 주변의 환경도 보여주고 인물 관계나 캐릭터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등 정보들을 이것저것 나열하거나 배치하는데, 그래야 관객이 이야기를 따라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파더>는 치매로 기억을 잃는다는 것, 다시 말해 지금까지의 나의 일상을 이루어왔던 여러 기억들, 삶의 조각들이 조금씩 사라져 가고 구멍이 나고 틈이 생기기 시작한 그 모습 자체에 주목하며 당사자의 혼란스러운 심리를 묘사한다.
위와 같은 상황은 거의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각본 구조만 그런 게 아니라 프로덕션 측면에서 집안 곳곳의 배경도 바뀐다. 예를 들면 벽난로 위에 어떤 그림이 분명히 걸려 있는데 조금 장면이 지나면 거기가 텅 비어 있다든지. 현관 근처 벽에 옷걸이가 걸려 있는데 다음날이 되면 없다든지, 장식장 안에 들어 있던 어떤 미술품이 보이지 않는다든지. 또 주방 싱크대 등 인테리어의 색상이나 콘셉트, 소품 배치가 조금 바뀌어 있다든지. 게다가 어떤 장면에서는 조금 전까지 분명히 아침이었는데 '앤'이 "저녁 드실 시간이다"라고 부른다든지. 이런 식으로 공간적으로도 '안소니'와 관객 모두에게 동요를 준다.
물론 <더 파더>는 이런 혼란스러운 정보들을 가지고 시간 순서대로의 재배열이나 추리를 해나간다든지, 잃어버린 기억을 재조합해서 어떤 단서를 찾는 종류의 이야기와 거리가 멀다. 그저 이 상황 자체를 '안소니'의 심리를 세밀하게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관객 자신의 인생도 돌아보게 되는데 그건 아주 여러 가지 생각들을 불러일으키는 쪽이다. '만약 내가 치매에 걸리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때 내 주변에는 누가 있을까?', '지금 내가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기억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점차 내 머릿속에서 지우개로 지우는 것처럼 사라져 간다는 건 대체 어떤 걸까?'
영화에서 '안소니'는 꽤 자주 손목시계를 찾는다. 나름대로 의미를 담아 해석해보자면 시간을 자기 손목에서 확인하고 싶어 한다는 건 이런 것이다. '안소니' 자신도 지금 자신에게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기억들이 점차 혼란스러워지거나 사라져 간다는 것을. 그런데 아직 자신은 멀쩡하다고 믿고, 간병인이 없어도 딸의 보호가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삶의 주도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여기며 그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한다. 이런 것이 시간을 자기 손안에 쥐려는 듯한 제스처로 나타난다. 물론 시계를 차고 있든 그렇지 않든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고, 가령 금으로 만든 시계를 차고 있다고 해서 시간이 더 천천히 가는 것도 아니다. 치매에는 뚜렷한 치료법이 없다. <더 파더>의 여러 장면이나 상황은 한편으로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에 대한 체념 내지는 수용의 의미도 담고 있는 듯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영화에는 이런 대사가 나오기도 한다. "화창한 날씨는 오래가지 않으니까, 화창할 때 많이 걸어 다녀야죠."라고. 지금 나이가 몇 살이든 간에 우리 인생은 계속해서 내일을 향해 흘러가고 있고 누구나 알다시피 삶은 유한하다. 그러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건 이런 것이다. 어차피 죽을 것을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서 뭐하냐, 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공평하도록 유한하게 주어진 이 인생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하면 잘 만끽하고 좋은 여행으로 맺을 것인가, 하는 것. 모든 좋은 영화가 그렇듯이 <더 파더> 역시 영화가 끝나고 나면 영화의 등장인물들만이 아니라 그것을 본 관객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극장에서, 혹은 IPTV나 VOD 등을 통해서, <더 파더>라는 영화를 이 글을 본 누군가가 만나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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