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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밖에서

영화 '명당'(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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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당>의 이야기는 인간사를 꿰뚫는 나름의 통찰을 담고 있다고는 할 수 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현생의 무게도 버거운데 자신이 죽고 나서의 후대의 복까지 걱정해 이곳저곳 터를 옮겨 집을 잡고 조상의 묘까지 이장하는 사람들과, 여러 대에 걸쳐 살아온 집이라며 으름장을 놓더니 웃돈을 대가로 제시하자 바로 넘어가는 사람들, 터가 좋은 곳이라 하자 제값을 훨씬 웃도는 비용을 치르고서라도 무리하게 집을 사기 위해 성화인 사람들. <명당>은 그러니까, 조선 말엽의 세도정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 상상력을 더해서, 자신이 머무는 곳을 명당으로 만들기 위해 애써보기보다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제 잇속을 채우기 위해 혈안이었던 사람들의 명암을 그려낸다.


(...)


'박재상'(조승우)의 과거사는 거의 생략한 채 현재의 상황과 서사에 몰두하는 영화의 선택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보다, 중반 이후의 큰 변수가 되는 것은 김씨 세도가의 수장인 '김좌근'(백윤식)의 아들 '김병기'(김성균)의 행동이다. 그에 따라 초반부 제법 막강하고 카리스마 있는 악당처럼 보이던 '김좌근'의 존재감은 오히려 퇴색된다. '헌종'(이원근) 역시 그가 어리고 무기력한 비운의 왕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내내 영화에서 겉돈다. '초선'(문채원) 역시 기방의 수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처럼 보이다가도 정작 뚜렷한 입지를 구축하지는 못한다. '명당'에 얽힌 인물들의 군상은 일정 수준 이상의 감흥을 끌어내지는 못하고 여러 인물들이 각자 만들어내는 단상만을 남긴다. 아주 길지는 않은 영화의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신 이후의 한 대목은 여운을 주기보다는 다소 사족처럼 느껴진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시대극 영화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명당>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내게는 그 대단한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였음에도 <명당>은 속까지 꽉 찬 영화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명절을 겨냥하고 개봉하는, 그저 모든 걸 적당한 정도로만 갖춘, 아주 나쁘지는 않지만 흔한 영화의 하나로 내게는 기억될 듯 하다.


(2018.09.15)


원문: https://brunch.co.kr/@cosmos-j/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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