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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적끄적

연극 '일의 기쁨과 슬픔'(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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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를 열었다. 분홍색 하트가 그려진 백설기 한조각과 저마다 색이 다른 경단 네개, 쑥색 꿀떡 두개가 들어 있었다. 허기가 느껴졌고, 이내 침이 고였다. 랩 포장을 벗겨내고 샛노란 고물이 포슬포슬하게 묻혀진 경단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방금 쪄낸 듯, 아직 따뜻했다. 오늘 새벽에 찾았나보네. 나는 달고 쫄깃한 경단을 우물거리면서 생각했다. 빛나 언니는 잘 살 수 있을까. 부디 잘 살 수 있으면 좋겠는데."
-장류진, 「잘 살겠습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창비, 2019, 33쪽)

연극 <일의 기쁨과 슬픔>을 공연 마지막 날에야 관람했다. 소설에서 읽었던 인물들 - 민희, 구재, 빛나, 안나, 거북이알 등 - 을 무대에서 만나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는데, 소설집 속 단편 중 여섯 편의 인물들이 마치 느슨한 세계관에 속해 있는 것처럼 읽혔다면 여기서는 판교를 배경으로 아예 하나의 이야기 안에 존재하듯이 연결된다.

출연 배우들은 장면이 바뀔 때마다 무대 장치들을 옮기는데 그게 마치 무용처럼 짜여 있어 작품의 의도를 대변하기도 한다. 자조적인 이야기를 소위 짠하게만 그리는 게 아니라 무겁지 않은 톤으로 유머로까지 만들어내는 힘. 애드리브처럼 들리는 몇몇 대사도 자연스럽게 활력을 넣어서 길지도 않은 공연시간(100분)이 더 짧게 느껴지는데, 연극으로 넘어오면서 축소되거나 생략된 것들의 선택이 대체로 납득 가능한 것들이다.

원하는 어딘가로 향하기 전에 잠시 스탑오버하는 일도, 미덥지 않은 사람의 안녕을 겨우 바랄 수 있게 되는 마음도, 내일도 별 다를 바 없는 출근의 일상이지만 그래도 웃을 일이 없지 않을 거라 믿는 바람도, 누구나 경험할 법한 기쁨과 슬픔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작중 '민희'가 '빛나'에게 쓰는 카드에는 '10년 뒤 더 성장한 모습으로 만나자'는 내용이 쓰여 있다. '빛나'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올라간 자기 카드를 보면서 '민희'가 하는 생각 또한 누구나 공감할 법한 종류의 것이겠다. 5년 뒤, 10년 뒤를 생각하면 한없이 막연하고 "그때까지 언니가 회사에 있을 수 있을까요? 그때까지 저는 회사에 있을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은 자연스럽게 나오기 마련이니까. 오늘을 살아가는 것 외에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많지 않지만, 끊임없이 이야기를 통해 마음을 나누고 누군가로부터 작은 위로를 얻기도 하면서 기쁨이 슬픔보다 조금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게끔 노력은 해볼 수도 있겠다고 느끼는 10월의 마지막 저녁이었다. '안나'가 조성진 리사이틀을 예매해놓은 데서 느끼는 작은 안도감처럼. (2021.10.31.)

https://brunch.co.kr/@cosmos-j/1353

다만 오늘을 사는 모두를 위한 이야기

연극 '일의 기쁨과 슬픔' 리뷰 | "상자를 열었다. 분홍색 하트가 그려진 백설기 한조각과 저마다 색이 다른 경단 네개, 쑥색 꿀떡 두개가 들어 있었다. 허기가 느껴졌고, 이내 침이 고였다. 랩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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