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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관해 이야기하기로 결심한 사람은 청자이자 독자가 될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고 싶어 한다. 빠뜨린 무언가를 찾아 헤매고 두고 온 무언가를 그리워하면서 끊임없이. 모든 아름다움에는 겉에서 헤아릴 길 없는 아득한 깊이가 있다고 하는데, 이야기꾼 중 어떤 이들은 그 세계를 눈앞에서 활자의 기억으로 생생하게 구현해낸다. 알고 있는 것과 좋아하는 것과 믿는 것들과 지나온 것들 모두가 거기 담겨 있는데, 시작은 단지 하나의 소풍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책갈피를 어디다 꽂아 두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때로는 마음만이 아는 것을 글자로 되살리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려다 끝없이 실패하는 형식"(이성복, 『무한화서』)으로, 한 사람에게서 다른 한 사람에게로 다만 되풀이될 따름이다. 이것은 어디서부터 언제 시작되고 있었던 거지?
웨스 앤더슨 세계에 한두 번 이상 거쳐갔던 모든 얼굴들이 마치 이 세계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거기 있었다는 듯이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등장해, 청자이자 독자인 나를 흔들어놓는다. 어쩌면 이 이야긴 그저 찾는 이 드문 잡지 하나의 조그만 섹션 한 귀퉁이의 부고 정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능히 하나의 우주가 된다고. 하지만 빛나지 않더라도 당신은 분명히 거기 있다고, <프렌치 디스패치>(2021)의 몇 명의 내레이터는 계속해서 들려주고 말해준다. 그들은 누군가 급히 휘갈긴 흔적 앞에서도 멈춰 서 거기 무엇이 있는지 골몰한다. 그들은 지난한 슬픔을 꾹꾹 소화해낸 뒤 이 울음 가득한 이야기를 울지 않고 써낸다. 원래 그럴 작정이었다는 듯이. 그들은 이야기꾼의 중립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https://www.instagram.com/p/CXtIZmvFu1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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