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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바다, 사우스 다코타, 네브라스카 등지에서 촬영한 <노매드랜드>(2020)를 볼 때의 감흥이 오리건에서 촬영한 <퍼스트 카우>(2019)를 보면서 비슷한 방식으로 전해졌다. 지금은 떠올리기 어려운 야생적이거나 목가적인 이미지들. 거기에서 만난 이야기를 통해, 기억에 남는 건 주인공들의 이름보다는 그들 사이의 관계성과 그들이 함께 꾸었던 꿈이었다. 19세기의 누군가가 바라보았던 밤하늘과 강가와 촛불, 그들이 밟았던 흙의 내음과 우유로 만들었던 빵의 냄새까지도 전해지는 기분. 주(State)가 되기 전 '준주'(Territory)였던 곳에서, 젖소가 흔해지기 이전에 '퍼스트 카우'(First Cow)를 가지고, 떠돌던 이와 이방인인 이가 정착과 부를 이루어내고자 했던 일들이 있었다. 영화의 시나리오 각색은 물론이고 원작 소설을 집필한 조너선 레이먼드는 직접 경험하지 못한 19세기의 세계를 상상하며 이 이야기를 써 내려갔겠지만 관객인 나는 4대 3의 스크린을 통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그곳을 그리워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가 있기도 전에 이미 누군가의 빛나지 못했던 삶들을 토대로 수많은 이야기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었고, 영화가 있게 되자 그것들은 미지를 건너 여기로 다가왔다. 아니, 빛나지 못했다는 건 진실이 아닐 것이다. "우린 곧 계속 갈 거야"라고 하는 말과, "(네 곁에) 내가 있잖아"라고 하는 말들이 거기 있었으니까. 이 영화를 올해가 가기 전에 만날 수 있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2021.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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