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뒤엉킨 꿈을 꾸느라 뒤척인 새벽이었다. 본래 꿈의 세부를 잘 기억하는 편은 아니다. 어떤 사람이 나왔다, 대략 어떠한 상황이었다, 정도의 느낌만 남는 것이 보통인데, 이것을 유달리 감각하는 건 그 꿈이 처음이 아니라서다. 꿈속의 나는 과거 현실의 자신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의 선택들을 반복하고 있었다. 꿈의 내용을 돌이킨다면 끊임없이 불가항력적인 것에 이끌려 어떤 말과 행동들을 계속하는데 그 발화와 움직임의 결과와 영향을 알면서도 그것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에 계속해서 시달리는 것이었다. 아니, 꿈속이었으니 그걸 '사실'이라 부르면 안 되는 건가.
어쨌든 반복된다는 건 흩어지지 않고 계속 남아있다는 뜻이겠다. 과거의 실패, 혹은 넘어짐들. 꿈에서 그것들을 반복적으로 만나는 일이 꼭 실제 삶에서의 어떤 것을 대변하거나 은유하거나 암시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타인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것보다 더 조심성이 따르는 일이어서, 자주 말을 아낀다. 그러다 보니 아마도 바깥에서는 꺼내지 않는 것들이 무의식 중에 발현되는 게 아닐까 한다. 우리는 왜 매번 실패하고 실수하고 잘못하기만 하는 것인지.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갈 시간에 어쩌면 더 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것은 아닐는지.
어디론가 기대고 싶어질 때, 스스로를 변호하고 싶어질 때, 두 눈 질끈 감고 가만히 있고 싶을 때. 앞으로의 나날들을 통해 해야 하는 일이란, 지난 것들을 실패가 아니라 다만 과정이었다고 믿을 수 있도록 배려와 성찰을 거듭하는 일이다. 낮에는 재방송 중인 TV 드라마 속에서 "우리가 사랑했던 그대로, 그 힘으로, 나는 또 살아갈게."라고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해주는 말을 들었다. 이 말은 같은 회에서 한 번 더 들렸다. 과거는 어떤 추억으로 두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어떻게 현재의 자신을 만들었는지 돌아보기도 해야 한다고 암시해주는 듯한 이야기였다. 언젠가는 또 같은 꿈을 꿀 것이고 또 언젠가는 지금이 어땠는지 까마득히 잊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어제와 헤어지는 중이다.
사진: 황정은, 『일기』 (창비,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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