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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의 산문을 여름마다 꺼내 읽고 있다. 이번에는 그가 동료 소설가 윤성희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을 오래 읽었다. 오직 소설을 쓴다는 사실로 인해 서로 연결된 사람들. 책에는 김연수, 편혜영, 박완서 등 다른 소설가들의 이름도 언급되는데, 공통적으로 느끼게 되는 건 그들이 그들의 소설들과 닮아 있다는 점이다. 쓰는 사람들이 다른 쓰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주하는 종류의 연대감처럼, 쓰는 이는 자신이 쓰는 글을 결국에는 닮게 된다고도 생각한다. 글쓴이의 손을 떠난 글들이 손을 떠난 뒤에도 계속 존재하고 시간이 지나서도 거기 있어 작품과 작가는 느슨하게나마 연결되어 있기를 지속한다.
내게 김애란은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것과 "그렇게 평범한 사물과 풍경이 기적이고 사건임"(「입동」, 『바깥은 여름』, 문학동네, 2017)을 깨닫게 하는 이 중 하나다. 김애란이 자신이 자란 시공간과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방식과 그것들이 빚는 세계는 그의 소설에서 만나온 모습과 닮아 있다. 세부를 포착하고 그것을 하나의 세계로서 생생히 체험시키는 것이 어떤 소설의 일이라면, 그리하여 "미처 몰랐던 마음의 테두리를 보여주고, 어느 땐 어둠을 극장으로 바꿔주기도 하는" 틈을 선사하는 게 소설이라면 어떤 소설가의 산문은 마치 소설인 것처럼 다가와 잊을 수 없는 시절로 남는다. 나는 여기저기서 시인이나 소설가가 쓴 산문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하고 다녔는데, 그건 이런 산문이 있기 때문이라고도 말하고 싶다. 한창 김애란의 산문과 소설과 강연, 인터뷰 등에 심취해 있던 때가 앞에서 말한 온전하고 열렬한 시절에 고스란히 포개어진다.
세 번의 여름을 생각한다는 건 그동안 축적된 많은 기록들을 꺼내보는 과정을 동반하는 일이다. 영화에 관해서든 영화가 아닌 것에 관해서든, 셀 수 없는 것들이 셀 수 없을 만큼 쓰였다. 잘 쓰인 것도 있지만 숙고되지 못한 채 쓰인 문장들도 많다. 꼭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말처럼, 글을 먼저 보내고 삶이 그것을 따라간다. 어떤 경우에는 쓴 글이 나보다 낫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당면한 업무나 청탁들을 해치우듯 해내느라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퇴고할 시간이 늘 부족한 요즘이다. 김애란과 같은 이들의 문장을 읽으면서 갖는 바람은 이런 것이다. 내 글이 하나의 작품 혹은 그 비슷한 무엇으로 남을 수 있다면, 내 삶은 적어도 그 글에 가까운 것이었으면 한다는 것. 흠잡을 데 없는 글이 아니라 삶을 닮은 글이면 족할 것이다. '이 사람처럼 쓰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이들의 글은 늘 이런 궁리를 하게 한다. 그 이름들은 그래서 영영 잊을 수 없을 이름이다. (2022.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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