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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날씨의 아이>(2019)에 관해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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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란 앞 뒤 생각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공경희 옮김, 민음사, 2001, 229쪽.
가출한 소년은 패스트푸드점에서든 라멘가게에서든 아니면 작은 캡슐호텔에서든, 책 한 권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있습니다. 그가 그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은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그 책은 자주 그의 곁에 놓여 있습니다. ‘호다카’라는 열여섯 소년이 주인공인 영화 <날씨의 아이>(2019)는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세 번 짧게 포착합니다. 많고 많은 책들 중 바로 그것일 이유가 단지 ‘우연히’는 아니겠지요.
팬층도 많고 그만큼 좋아하지 않는 경우도 많은 듯하지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에서 돋보이는 건 이미지를 그려내는 방식 자체보다도 거기 담긴 세부들입니다. 그러니 ‘호밀밭의 파수꾼’이 한 번도 아니고 세 번 등장하는 건 어떤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이 들어요. 물론 <언어의 정원>(2013)의 비, <너의 이름은.>(2016)의 구름과 같이 그의 작품은 언제나 날씨에 민감했기도 하지요. “날씨는 하늘의 기분이다”라는 말이 <날씨의 아이>에 등장할 만큼 이 이야기는 사소한 것에도 쉽사리 양극단으로 바뀔 수 있는 기분들을 공들여 묘사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심리 묘사로 대표적인 성장 소설로 언급되곤 하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 콜필드’를 물론 <날씨의 아이>의 ‘모리시마 호다카’와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건 무리가 따를지도 모릅니다. 다만 생각한 것은 바로 저 앞의 인용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직전 글에서 다룬 <어린 왕자>(2015)의 연장선에서, 어떤 순수함을 지켜내고 싶은 마음이라고 이 이야기를 설명해볼 수 있다면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인터뷰에서 “날씨란 지구적인 규모의 순환 현상이지만 인간에게는 아주 개인적인 것으로 다가온다. 그날 날씨에 따라 기분과 행동까지 변한다”라며 단순한 자연 현상이기를 넘어 하늘의 기분이자 누군가의 기분이 되기도 하는 날씨에 관해 표현하고 싶었다는 언급을 합니다. (영화의 영문 제목은 ‘Weathering with You’입니다) 결과적으로 <날씨의 아이>는 전작인 <너의 이름은.>보다 제작비가 더 많이 들어간 데 비해서 그에 훨씬 못 미치는 흥행 성적을 기록했고 세간의 반응도 아주 우호적이지만은 않았지만, 나름대로 살펴보고 생각할 여지를 충분히 주는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이상 기후로 몇 달 동안 비만 오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는 도쿄. 뉴스에서는 연일 ‘관측 사상 처음’ 같은 반응을 내놓고 있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날씨가 맑아지기를 바라는 중입니다. 그때 정말로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들어주는’ 것처럼 비를 그치게 하는 소녀 ‘히나’가 등장해요. 물론 비 자체를 완전히 그치게 해주는 건 아니고 ‘히나’가 있는 곳의 특정한 범위 내에서 일시적으로 하늘을 맑게 해주는 제한적인 능력이기는 하지만, 여러가지 에피소드들로 ‘호다카’와 ‘히나’는 의뢰를 받아 사람들에게 말하자면 ‘맑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히나’에게는 운명 같은 것이 있어서 계속해서 비를 그치게 할수록 그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작중에서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날씨의 무녀’ 같은 존재로 회자되는데, 결국 ‘호다카’와 ‘히나’에게는 거대한 화두 하나가 더 생기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비를 그치게 하면 ‘히나’가 희생될 수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비가 쏟아지기를 내버려두면 장차 도쿄는 수몰되어 버립니다. 단지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하나를 포기하는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하느냐와 직결되는 일입니다. 아마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날씨의 아이>에 표현된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히나’와 ‘호다카’의 시점 밖에서 묘사되는 <날씨의 아이> 속 세계는 꽤 비관적입니다. 비관적인 세계는 쉬운 체념을 낳습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그냥 가만히 앉아 적응하자고요. 만약 희망을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그 세계는 점점 더 나빠질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스토리텔러는 그럴수록 세계가 여전히 괜찮아질 수 있다고 믿어야만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고 신카이 마코토는 오랫동안 그 중 한 사람으로 있기를 택한 것 같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접할 때면 떠오르는 황인찬 시인의 시 한 대목이 있습니다. 편의상 연과 행 구분을 바꿔 인용하자면 “이 장면은 불안하고 섬세한 영혼의 아이들이 모험을 마치고 일상을 회복하였으며, 앞으로도 크고 작은 모험을 통해 작은 성장을 거듭해나갈 것임을 암시하는 그런 여름의 대단원이다.”(「재생력」, 『사랑을 위한 되풀이』(창비, 2019)에서) <날씨의 아이>는 그렇게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미 달라지고 있었던 세계는 너무도 달라져버리고, ‘히나’와 ‘호다카’에게 그것은 이전으로 영영 돌아갈 수 없는 하늘만큼의 거리 정도는 되는 것이거든요. <날씨의 아이>는 오히려 희망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치러야 할 대가와 책임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유독 올해 날씨가 추웠는지 더웠는지 어땠는지 잘 기억나지 않아요. 온통 전염병과 그것에 대한 두려움과 무기력감으로 세상이 가득했던 한 해여서 그랬는지도요. 그러나 비가 그치고 해가 들어오듯 계절은 계속 바뀌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그럴 것이고요. 계절이 지나가는 기분을 분명 어떤 순간에는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제 올해가 하루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의 올해 기분은 어떤 것이었을지요. 2020년의 여러 순간을 함께해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방 사장님이 쓰시는 이메일 뉴스레터에서 전에 그런 문장을 읽었어요. “살다가 만나요.”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1인분 영화, 2020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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