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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그는 문어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하면서도 쉽사리 벽을 허물지 않는다. 문어가 상어와 같은 적으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등 위험한 상황에 처하자 그는 개입을 고민하면서도 오랜 세월 지속된 생태계의 작동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문어를 지켜보며 느끼는 크레이그의 감정을 <나의 문어 선생님>의 카메라는 생생하게 포착한다. 다큐멘터리 제작자답게 그의 카메라는 직접 접하기 힘든 다시마숲 연안의 식생을 가까이에서 포착하면서 세계에 흥미를 느끼는 학자의 호기심과 문어를 지켜보면서 생겨나는 애착을 동시에 놓치지 않는다. 이것은 자연을 대하는 인간 중심의 낭만 같은 것이 아니라, 곧 진심으로 선생이라 여기는 문어와의 우정이다. 문어가 자신의 다리를 크레이그의 몸에 가져다 대는 모습은 충분히 그것이 단순한 동물적 행동이 아닌 친밀한 우정의 형성이었음을 의심하지 않게 만든다.
<나의 문어 선생님>은 문어의 일생을, 외부자의 시선 대신 문어의 생각을 진정 이해하려는 노력을 담아 관찰하는 동시에 함께한다. 짝짓기를 한 뒤 알이 무사히 부화하기까지 제 몸을 희생해 보호하는 문어의 결심. 상처 난 자리에 새로운 살을 돋도록 하는 문어의 인내. 그러한 것들을 탐구하는 크레이그의 여정은 곧 ‘메타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문어의 생각을 생각하는 일, 곧 문어에 이입하는 일. 그건 어느 동물이든, 어느 식물이든, 그리고 어느 누구를 향해서든 일어날 수 있다.
생태계의 구성원으로서 다른 종을 전혀 해치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건 가능하지 않다. 그렇지만 스스로만이 중심이 되는 세계관을 벗어나 다른 종에 대해, 가보지 않았던 세계에 대해 애정 어린 호기심을 갖고 생태적 관점에서 탐구해 나가는 정신을 잊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이 세계가 조금씩 선순환할 수 있지 않을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오랜 영화제작에 지쳐 있었던 크레이그 포스터에게 낯선 문어와의 조우가 일 년에 걸쳐 매일 그를 바다로 향하게 만들었듯, 세계의 경계를 확장해 나가는 여정은 스스로는 물론 그것을 접하는 누군가를 변화하거나 행동하게 이끈다. 그것이 한 마리 문어를 ‘선생님’이라 칭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한 이유다.
https://brunch.co.kr/@cosmos-j/1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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