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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7월 초에 <밤의 정원> 단독콘서트의 상영이 (상영관은 달랐지만)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있었으니 규선 님을 극장에서 무대인사로 뵙게 된 것이 1년 만이었습니다. 시간이 벌써 몇 달 지났음을 감안하더라도 콘서트 장소에서 경험했던 것들(세트리스트나 공연의상이라든가 특정 순간에 볼 수 있었던 세션 분들과의 협연이라든지)을, 집에서는 블루레이로도 재현할 수 없는 현장의 감동을, 극장 환경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상영회의 매 순간 자체가 특별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데요. 불과 하룻밤이라도 지나고 나면 조금씩 휘발될 기억을 글로 남겨보려고 합니다.
*저는 오후 2시 20분 상영(9관)에 함께했습니다.
https://youtu.be/wdTDSS497go?si=JgffDeugd9VYySKR
1. 해본 경험을 (다른 시각에서) 다시 한 번 행하기
제목에 쓴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조금 먼저 사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박준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 있겠습니다>에 쓴 발문에서 가져온 이야기에요. ‘돌봄을 위한 작정’이 곧 사랑이라 말하는 대목입니다.
“그러니까 돌봄으로서의 요리란 당신이 무언가를 먹고 있는 미래에 혼자 미리 갔다 온 다음, 이번에는 당신을 데리고 한 번 더 그곳에 가는 일이다. (…) 그러므로 내가 당신을 위해 음식을 만든다는 것은 이 세계가 흡수해도 안전한 것임을 미리 확인하고 당신에게 그것을 주는 일이다. 그렇게 우리가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은 우리의 안전함을 먹는 일이 된다.”
-신형철, 「조금 먼저 사는 사람」, 박준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에서, 문학과지성사, 114쪽
일반적으로 극장 등에서 보는 공연 실황(예를 들면 ‘레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등)은 기 관람한 공연이 아닌 것을 극장에서 처음 만나는 경우가 많다는 점과 비교하면,
관람했던 공연의 실황을 극장에서 관람하는 일도 위와 같거나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아직 먹지 않은 음식과 달리 콘서트는 이미 룸메이트 들이 경험한 것이므로 위험한 것이 아니지만, 각종 비하인드 영상과 더불어 촬영된 방대한 콘서트 현장의 이곳저곳을 고르고 골라 편집하고 자막을 붙이고 돌비 서라운드 믹싱을 하고 기타 여러 음향과 상영 환경 등을 점검하는 일은 마치 심규선 님과 헤아릴 규에서 룸메이트 들을 위해 정성 들여 상영회라는 경험을 준비하는 일이니 위와 다르지 않을 듯합니다.
작년 상영회 때도 느꼈지만, 이번에는 그 이상으로 상영회를 준비한 분들의 고민과 정성이 가득 느껴져서 너무나 감사했어요. 무대인사를 30분가량 편성하는 일 자체가 쉬운 게 아닌데 그것도 어디서 경험하기 쉽지 않은 귀한 경험이었고요 :) 다행히 괜찮은 자리를 예매해서 B21, B22에서 짝꿍과 함께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블루레이로 만나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니, 끝나고 인터뷰 때 이야기 한 것처럼 지금 만나고 있는 이 실황이 끝나지 않기를 내내 바라면서 장면을 붙잡는 기분이었어요.
2. 가사를 상기하면서, 쓰고 부르는 사람에게 집중하기
다른 가수의 노래도 마찬가지로 저는 가사를 잘 외우는 편이 아니어서 작정하고 일종의 공부를 하지 않으면 ‘떼창’과 같은 가사를 숙지하고 있어야 하는 일련의 이벤트에 취약합니다.
영화를 볼 때 그게 자국의 영화라면 자막과 함께 관람/감상할 일이 예전에는 여간해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OTT를 정기구독하고 콘텐츠 감상을 하는 일이 일상화되면서 달라진 점이 자국의 언어에도 ‘자막’을 설정하고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거기에 어떤 영화/드라마는 아예 제작 단계에서부터 (사투리라든지, 혹은 특정한 의도와 맥락을 가지고) 어느 부분에 자막을 넣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넣지 않기도 합니다. 말로 듣는 언어는 말로만 들을 때와 글자와 함께 들을 때 그래서 경험이 달라집니다. (tmi: 예를 들면 넷플릭스 영화 <로마>(2018)는 스페인어, 멕시코 원주민어, 영어 등 여러 언어가 등장하는데 특정 언어는 의도적으로 자막을 삽입하지 않습니다)
매 곡이 시작할 때마다 곡의 제목이 지시되고, 가사가 시의 행과 연처럼 실시간으로 표시되는 점이 제게는 각별했습니다. 때로는 현장에서 규선 님께서 (아마도 일부러) 특정 대목의 단어를 바꿔서 부르신다든지 하는 부분도 있는데, 그것도 자막 가사를 비교하며 보고 들으니 공연의 현장감으로 자연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얼마 전 생일카페에서 출제(!) 되었던 규능평가의 여러 문제들도 새삼 상기되었는데요.
덕분에 실황의 처음부터 끝까지, 규선 님이 작사한 노랫말들을 한 글자 한 글자 마음속으로도 같이 발화하면서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가사를 보면서 가사를 듣는 일이 한 곡 한 곡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경험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3. 가사를 알더라도 그것이 진실이 되기 위해서는 실제로 노래가 행해져야 했던 것이다
"헵타포드의 경우 모든 언어는 수행문이었다. 정보 전달을 위해 언어를 이용하는 대신, 그들은 현실화를 위해 언어를 이용했다. 그렇다. 어떤 대화가 됐든 헵타포드들은 대화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지식이 진실이 되기 위해서는 실제로 대화가 행해져야 했던 것이다."
-테드 창,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 『당신 인생의 이야기』, 김상훈 옮김, 엘리, 2016, 219쪽
가사를 눈으로 함께 읽으면서 실황을 만나니 또 하나 (저만의 의미부여일 수 있지만) 경험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불과 몇 초 뒤, 다음 장면에서 일어날 일을 알지만 혹은 몰랐더라도 다음 가사의 내용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실제로 규선 님이 그것을 부르시지 않는다면 비록 실시간 공연이 아니라 촬영된 실황이라고 해도 그 가사는 실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
다시 말해서 저는 “그저 다 잊으라 하면 하얗게 잊힐 줄 아십니까”의 다음에 “나를 만지던 손길은 이제와 간 데 없고“가 불릴 것이라는 걸 모르지 않지만 그건 알기만 해선 안 되고 발화되어야만 마침내 정말인 것이 되는 경험이 저는 실황 영상의 사소한 한 요소일 수도 있지만 가사를 보는 일로 가능했다고 여깁니다. 머리나 마음으로 기억하거나 생각만 하는 것과 그걸 눈으로 보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거든요.
4. 좋은 이야기는 그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 진정 시작된다
마지막으로, Q&A 시간에 있었던 다른 룸메이트 분들의 질문과 거기에 대한 규선 님의 대답, 응답이 이번 상영회를 진정 완성시켜 줬다고 기억하게 됩니다. 작사, 작곡을 하는 과정에 대한 것도 그렇지만 특히 ‘잿빛의 노래’와 관련해 들려주셨던 이야기를 비롯해 (어떤 상황이나 시련 따위가) ”지나간다“라는 것의 의미에 대해 되짚어볼 수 있는 시간이 스크린으로 만난 실황의 여운은 물론이고 ‘심규선’의 음악 세계가 지시하는 바를 마음으로 다시 소화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 것 같아 손 들어 질문해 주신 분들께도 감사하게 됩니다.
저는 영화와 관련된 일에 종사했기 때문에 롯데시네마 월드타워를 수십 번은 와 봤고 너무나 익숙한 극장 중 하나인데요, 작년에도 올해에도 규선 님의 공연 실황 상영회 및 무대인사를 계기로 이곳이 특별한 경험의 장소로 기억될 수 있어서 소중합니다. 어떠한 가수를 좋아하는 일이 오프라인에서 경험되는 건 사실 콘서트가 아니면 많지 않은데, 얼마 전에 생일카페도 열렸지만 이번 상영회를 통해서 (아직 모르는 분들도 정말 많지만) 반가운 얼굴들을 다시 만나뵙고 인사드릴 수 있어서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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