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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적끄적

가지 않은 길 대신, 주어진 길을 바라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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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쯤 되면 우리야말로 여러 갈래의 갈림길 앞에 서 있는 것과 같다.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 외로운 선택을 한 사람의 자기 긍정을 표현한 시? 자의적 선택에 사후적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의 자기기만을 꼬집은 시? 후회가 많은 이에게 들려주는 부드러운 충고의 시? 나의 대답은,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 그래야 한단 말인가. “길은 길로 이어지는” 것이어서 한 번 놓친 길은 다시 걸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고 이 시는 말하지만, 작품은 길과 달라서, 우리는 시의 맨 처음으로 계속 되돌아가 작품이 품고 있는 여러 갈래의 길을 남김없이 다 걸어도 된다. 다행이지 않은가. 인생은 다시 살 수 없지만, 책은 다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의 해석에 관하여 쓴 신형철 평론가의 기고 글 중에서. ("모두가 사랑하고 대부분 오해하는?" - 신형철의 격주시화 (隔週詩話) - '가지 않은 길' 속의 여러 갈래 길, 2016.07.01 한겨레)

단지 거기까지였을 것들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다듬었다. 스스로를 '쓰는 사람'이라고 칭하는 일에 기꺼이 위협을 가할 만한 일련의 과정이었다. 지나간 선택들을 되짚었고 그 선택들로 인해 생겨난 일들을 생각했다. 선택하지 않았거나 그랬어야 하는 것들도 생각했다. 이것은 얼마만큼의 과정인 것이냐는 물음을 품은 채로 가을의 끝을 나는 내내 앓았다. 그래야만 했다. 지난 계절이 오래 기억 속에 잊히진 않겠지만, 부러 생각하고 꺼내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뒤를 떠나 앞을 보고 걸어야겠다. 그건 정말 그래야 했을 일인지 모른다. 더는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돌아보고, 다시 보고, 고쳐 쓰는 일은 영화와 책에서만 할 것이다. 이 생은, 갔어야만 한다고 여겼는데 그러지 못한 길보다는 가게 될 줄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길이었던, 것들의 합이 만들어내는 오늘로 살아질 것이다. 주어진 길을 꼿꼿하게 걸어가야지. 고개 들고, 허리 펴고, 가볍게 주먹 쥐고. (2018.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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