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 쓰던 손수건 하나 찾으려고 책상 위 선반 전체를 뒤적거리다 종량제 봉투 10리터짜리 하나를 거의 꽉 채울 만큼 안 쓰는 물건을 버렸다. 이걸 왜 남겨두었지 싶은 것들. 딱히 앞으로 소장해두진 않을 것 같은 옛 영화 굿즈들과 이제는 없어진 물건의 포장 봉투나 상자 같은 것들. 깊숙한 곳에 낯익은 박스 하나가 있었고 안에는 옛 편지나 엽서, 쪽지들이 있었다. 대학 신입생 OT 때 내게 써준 롤링페이퍼 속 멀어진 이름들, 대외활동을 할 때 만든 명함과 행사용 스태프 명찰, 이제는 이름만 기억하는 사람이 책 선물과 함께 보내온 손수 그린 책갈피와 엽서, 미안함을 남긴 사람의 메모, 좋은 친구가 되자며 시집이 마음에 들기를 바란다고 쓴 편지. 좋아했던 사람. 친했던 사람. 이제는 연락할 수 없는 사람. 여전히 메신저에 표시돼 있는 사람. 등등. 사람. 사람들. 그러다 오전 1시 40분. 그 내용 하나하나를 빠짐 없이 읽고는 또 다른 봉투 하나를 발견했는데 거기는 부모님과 형으로부터 온 몇 안 되는 편지가 담겨 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첫 날에 군에 있는 형이 수능 보느라 고생했다며 대학 가면 이런 이런 것들 생각하고 조심하라 보낸 편지, 내가 입대하기 두달 전 엄마가 쓴 편지, 지하철 승차권을 보내며 아빠가 짧게 남긴 메모, 그런 것들. 어느 편지에서 형은 자기가 군에 있는 동안 엄마 아빠가 적적할 거라며 '네가 알아서 잘 챙겨드릴 거라 믿는다'고 썼고, 어느 쪽지에서 아빠는 '엄마한테 자주 전화하거라'라고 썼고, 어느 편지에서 엄마는 '매 순간이 다시 없을 순간이니까 최선을 다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살아라'고 썼다. 2007년 새해 첫 날 형이. 아빠가. 사랑하는 엄마가. 양이 많지는 않은 탓에 읽는 건 순식간이었는데, 영주를 벗어난 후의 지난 삶들이 한폭에 그려졌다. 어떤 종이는 아무리 잘 보관해도 글씨가 지워지거나 변색되거나 그런다던데. 노트 앱에 타이핑이라도 해두어야 하나, 폰으로 사진을 찍어 클라우드에 올려둬야 하나. 그런 생각들을 하다 다시 봉투에 담아 들어 있던 박스에 넣었다.
찾으려던 손수건은 그 선반에 없었고 지난 여름에 들고 다니던 에코백 중 하나의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