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일기 썸네일형 리스트형 영화 '틴 스피릿' GV의 일기: 6월 4일과 6월 5 한 편의 영화에 관하여 할 수 있는 이야기의 길이 혹은 폭은 어디까지일까. 의 GV 행사 준비를 하면서 고민이 없지는 않았다. 상영시간 93분짜리의, 가볍다면 가볍고 또 뻔하다면 뻔한 이 영화를 두고 얼마나 대단한 해설 혹은 생각들을 전해줄 수 있을까. 시간을 내어 극장에 와준 참석자들에게 그 시간이 알차다고 생각할 만한 이야기로 남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감독과 배우들의 해외 인터뷰와 각종 리뷰들을 빠짐없이 찾아보면서 언론/배급 시사회에서 본 영화의 장면들을 돌이켰다. 몇 년 전에나 했지 요즘은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펜과 노트를 꺼내지 않게 된 지 오래지만 모처럼 긴장 속에 펜을 들었다. '내가 생각한 그대로의 이야길 하자'며 써 내려간 진행 노트는 9천 자가 넘는 분량이 되었다. 함께.. 더보기 5월 20일 영화의 일기 - '논-픽션'(2018)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2018, 원제 'Doubles vies')은 출판계에 종사하는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오늘날 책과 문학의 역할은 무엇인지, 그리고 시대의 변화를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관한 물음을 던지는 영화다.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인식을 넓혀나가게 하고 동시에 지적 사유를 유도하는, 그러면서도 팽팽하고 첨예한 이야기인데, 이는 단순히 '전자책 vs. 종이책' 정도로 대답을 단순화할 수 없는 주제이기 때문에 그렇다. 영화 속 인물들이 주고받는 말들의 내용은 대부분 친숙하면서도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보거나 생각해봤을 법한 이야기들이 많아서 그 자체로 아주 신선하거나 기발하거나 혹은 경탄할 만큼의 어떤 통찰을 담은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문화산업과 콘텐.. 더보기 5월 9일 영화의 일기 - 불확실함 속에서 글쓰기 쓰는 사람 누구에게나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확신이 옅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써야 한다는 말은 반드시 어려울 수밖에 없는 주제에 대해 쓰기를 주저하게 만든다. 간단히 요약해달라는 말은 긴 글 쓰기의 의미 자체를 퇴색시킨다. 직관적이고 명료하며 짧은 영상 매체가 선호되는 시대에는 더 이상 글쓰기가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대부분의 글쓰기는 그것에 들어간 노력과 담긴 시간만큼의 보상이 담보되지 않는다. 수많은 글은 지금 이 순간에도 먼지를 쓴 채 잠들어 있다. 글을 쓰는 일에 대한 확신이 약해지는 것의 흔한 이유 중 하나는 공들여 써봐야 그것을 누가 얼마나 성실히 읽어주겠느냐는 것에 있다. 다만 그럼에도 쓰기를 멈추지 않고 포기할 수 없는 건 어쩌면 어떤 글을 마쳤.. 더보기 4월 24일 영화의 일기 - <어벤져스: 엔드게임> (2019)은 여러모로 (2014)를 떠올리게 한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내걸고,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으며, 대가를 감내하고 무게를 피하지 않은 이야기가 영웅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고 그 영웅이란 특별하거나 희귀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다. 세상을 사랑할 줄 아는 이가 최고의 영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던 스탠 리는 그가 일궈낸 세계에 즐겁게 빠져든 채 자신의 마지막 영화 안에서도 사랑이란 말로 스스로를 인용한다. 영화 역시 세계관 내 다른 영화를 끊임없이 되가져오거나 변용한다. 영화 속 '어벤져스'들은 알고 있는 하루를 다시 살거나, 가장 아픈 심연을 마주하거나, 가장 그리워했던 무엇인가와 재회하고, 피할 수 없는 일 앞에서 자신을 희생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한 명 한 명이.. 더보기 4월 17일 영화의 일기 -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 지난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부문 작품상 후보작이었던 (2018, 이하 'RBG')를 조금 뒤늦게 봤다. 'Notorious RBG'로 통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삶은 보는 내내 감탄사와 흐뭇한 미소를, 존경을 담아 보내게 했다. 그의 삶을 비교적 무난하고 익숙한 방식으로 담아낸 다큐멘터리였지만 는 여러 대목에서 기억에 남았다. 그중 하나는 그가 대법원 소송에서 변론을 맡은 사건 중 1975년 와이젠펠드. 아내를 병으로 먼저 떠나보낸 와이젠펠드가 혼자 아들을 키우고자 했음에도 남성이어서 보육수당을 받을 수 없었던 것에 대해 제기한 소송이다. 루스가 이 사건을 담당한 건 성차별이 성별을 떠나 모두에게 부당한 것임을 증명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 "유치원생에게 설명하는 선생처럼 말하고자 했다"라는 그의 .. 더보기 4월 15일 영화의 일기 -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11) 2005년 출간된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2011)는 국내 극장에 정식 개봉하지 않은 영화다. 물론 9/11 테러와 세월호를 바라보는 마음이 같을 수는 없겠으나, 올해에도 찾아온 4월 16일을 앞두고 이 영화 생각이 나서 다시 보게 된다. 아빠의 죽음을 '그날' 1년이 지나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소년 '오스카'(토마스 혼)는 우연히, 그리고 1년 만에 처음으로, 아빠의 방에 들어갔다가 마치 아빠가 자신에게 남긴 퀴즈이자 단서처럼 믿어지는 무언가를 발견한다. 죽음은 설명할 수도 없고 예고될 수도 없이 찾아오는 것이어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무겁고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아픈 것이겠다. '오스카'의 아빠는 시신을 찾지 못하고 빈 관으로 장례를 치렀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아직 '유가족'이 .. 더보기 4월 12일 영화의 일기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리뷰 등을 통해 종종 사적으로는 (이분적인 선택을 썩 선호하진 않지만 그래도 따지자면) '마블'보다는 'DC' 취향에 가깝다. 잭 스나이더 감독이 연출한 (2009)과 (2013)을 특히 좋아하고 패티 젠킨스의 (2017)은 말할 것도 없으며, 나머지 'DCEU' 영화들도 어느 정도 재미있게 본 편이다. 그러나 DC가 해내지 못한, 마블의 탄탄하고 결속된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칭찬할 수밖에 없다. 비록 상향 평준화로 인한 일정 수준의 단조로움과 그로 인한 피로감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마블은 (2018)나 (2019)처럼 단순히 새 캐릭터를 투입시키는 것을 넘어 기획된 세계관 내에서 꾸준히 변화와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페이즈 3'의 시작이 된 '시빌 워'(2016)부터 맡아온 루소 형제 감독의 이.. 더보기 3월 31일 영화의 일기 - 쓸 수 있는 데까지 쓰기 영화 리뷰 쓰기에 관한 클래스를 하면서 매시간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는, 글은 '완벽히' 완성되는 게 아니라 '쓸 수 있는 데까지' 써내는 것에 가깝다는 점이다. "작품을 완성할 수는 없다. 단지 어느 시점에서 포기하는 것뿐이다."라는 폴 발레리의 말을 인용한다. 머리와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생각과 감정은, 생각과 감정 자체이지 그것이 언어화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문자 언어로 표현된 글은 내가 느낀 내 의도를 완벽하고 정확하게, 그대로 옮겨낼 수는 없다. 다만, 가능하면 그것을 잘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더 좋은 단어와 문장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과정에서 글쓰기의 의의가 발견될 따름이다. 어차피 완벽한 글을 쓸 수는 없을 테니 써봐야 의미 없는 것이 되는 게 아니라, 세계의 현상을 .. 더보기 3월 21일 영화의 일기 - <우상> 에서 으로 이어지는 이수진 감독의 장편 연출 필모그래피는 이질적이다. 비교적 영화가 펼쳐내는 화두가 명확했던 에 비하면, 은 그 뉘앙스만 있는 이야기라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어쩌면 분명히 파악하기 어려운 일부 사투리 대사처리도 그 의도가 아닌가 여겨질 만큼).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실질적으로 총 세 번에 걸쳐 바뀌는데, 중심이 옮겨감에도 불구하고 144분을 운용하는 긴장감이 일관되게 이어지는 건 장점이다. 그러나 영화의 제목 - 엔딩 크레딧 직전에만 나오는 - 이 직접적임에도 정작 장면, 대사, 인물의 표정 등은 흩뿌려진 채 관객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그것이 스릴감의 한 동력처럼 보이며, 나아가 이면의 함의를 짐작하게 유도하느라 정작 세 인물이 도달하는 종착지는 해석을 강요할 뿐 그 자체로 매력적인.. 더보기 3월 18일 영화의 일기 - <악질경찰> 이정범 감독의 신작 (2019)은 아무래도 와 와는 다른 궤의 작품처럼 다가온다. 확연히 액션의 화려함보다 주인공 '필호'(이선균)가 어떤 사람이었고 영화 속 사건을 겪으며 어떤 사람이 되어가는지 그 변화를 보여주는 데 치중하는데, 그와 같은 사건에 연루되는 '미나'(전소니)의 캐릭터는 한편으로는 소비적이라는 느낌이 들면서도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이내 납득하게 된다. 몇 주 간격으로 개봉하는 과 함께, 같은 세월호 사건이 영화의 한 서브플롯으로 등장하거나 혹은 핵심 소재로 쓰인다는 점에서 상업 영화로서는 이례적인 시도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하는데, 당겨 말하자면 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른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혹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어두운 .. 더보기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