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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

영화 '더 파더'(2020) 후기/리뷰 오프닝 크레디트를 보면서 '불과 전에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음악을 접했는데 이 영화 음악으로 또 만나다니!' 같은 감탄을 하며 지난 경험을 기억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지만 (2020)는 영화를 보는 내내 기억이 아닌 망각에 관해 상기하도록 이끈다. '안소니'(안소니 홉킨스)에게 어떤 이가 "화창할 때 많이 걸어 다녀야죠, 화창한 날씨는 오래가지 않으니까."라고 말한다. 붙잡으려 해도 손아귀를 빠져나가고 어느 순간 다 흘러가고 다 떠나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생의 망연한 순간이, 대단한 잘못을 한 것도 잘못 살아서도 아니고 단지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로 찾아온다. '안소니'는 영화 내내 몇 번이나 손목시계를 찾지만 그는 시간을 제 손안에 넣을 수 없다.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이며 어제 무엇을 했고 오늘 아침에 어.. 더보기
나보다 근사한 영화들 기록의 대상이 될 만큼 좋았던 영화들을 찬찬히 열어 보면 거기에는 하나라도 빠져선 안 될 장면들, 그 인물이 바로 그 상황에서 반드시 해야만 한다고 믿어지는 말들, 영화가 아닌 인생의 배경음악이 될 법한 스코어들, 다른 방향과 각도와 거리에서 보는 것을 상상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카메라의 바로 그 시선 같은 게 있다. 영화와 달리 나는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거나 별로 필요하지 않은 글을 쓰거나 생의 유한함을 잊고 게으름을 부릴 때가 많지만 영화들은 그렇지 않다. 끝나야만 하기 때문에 시작된 순간부터 한 프레임도 쉬지 않고 오직 나아간다. 가장 끄덕일 수 있는 방식으로, 혹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있는 그 영화들은 영화가 끝나고 난 뒤의 나를 그 영화를 보기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도록 만든다... 더보기
어떤 경우에도 훼손되어서는 안 될 진실에 관한 질문: 영화 '모리타니안'(2020) 리뷰 (...) 표면적인 이 서사를 주도하는 인물은 '낸시'와 '스튜어트'지만 영화의 제목처럼 모리타니 사람인 '술라히'의 내면 묘사에 은 가장 많은 공을 들인다. 기소도 재판도 없이 몇 년을 가족과 떨어져 고립되어야만 했던 그에게 과거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관해 몇 개의 시간대를 오가며 세세하게 보여주는 반면 '낸시'와 '스튜어트' 그리고 '낸시'의 파트너인 '테리'(쉐일린 우들리)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캐릭터의 전사가 축소된 채로 다룬다. (물론 '스튜어트'가 이 일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나름대로 충실히 언급된다.) 에서 현재 시점에 해당하는 장면들은 2.35대 1 화면비율(시네마스코프)이지만 과거 시점에 해당하는 장면들은 딱 한 군데를 빼고 모두 1.33대 1 화면비율이 쓰였다. 시간적 배경 등에 따라 .. 더보기
각자의 진실한 거짓들이 서로 공존하는 방법: 영화 '페어웰'(2019) 리뷰 (...)이것은 할머니를 속이는 것인가. (작중 미국에서는 이것이 불법이라는 것이 언급되기도 한다.)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것은 과연 있나. 은 이와 같은 상황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해 몇 가지 추가적인 사실들이 더 밝혀지거나 언급된다. 예를 들어 가족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할머니 '나이 나이' 역시, 과거 남편의 질병에 대해 지금 가족들이 하고 있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대했던 적이 있다. 영화의 중심인물인 '빌리' 역시, 자신의 커리어와 관련된 어떤 일 하나를 가족에게 '걱정시킬까 봐' 일부러 말하지 않는다.영화 초반에는 '빌리'가 중국으로 돌아오기 전, 가족들과 나누는 식사 중 대화 장면이 짧게 지나간다. 반려 고양이가 죽었다는 사실에 대해 처음에는 직설적으로 말했다가 '그런 충격적인 일은.. 더보기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 - 조해진, 김현 (미디어창비, 2020) 조해진, 김현,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미디어창비, 2020) www.yes24.com/Product/Goods/96395667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 “구십구 방울의 슬픔이 아니라 한 방울의 기쁨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우리가 잃어버린 시절과 마음을 찾아서소설가 조해진과 시인 김현의 다정한 응답타자에 대한 사려 깊은 시선으로 www.yes24.com "잃어버린 것에 관한 생각의 파도는 자연스럽게 잃어버려선 안 되는, 아직 잃어버리지 않은 것들에 가닿지요. 어딘가에 잃어버린 것들이 쌓여 이룬 섬이 있다고 상상하게 됩니다. 잃어버린 영화나 잃어버린 편지를 찾아 떠나는 항해는 결국 이러한 깨달음을 남기지요. 그것은 멀리 있지 않다." (김현, 5쪽, 프롤로그에서) "이 글을 쓰고 나면 저는 또다시 .. 더보기
승리호 - 한 사람의 힘만으로 세상을 구할 수는 없어서 "순이는 지금도 깜깜한 우주에서 아빠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오락 영화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쉽고 명확히 전하고, 적당한 유머와 감정 안에서 세계에 속한 이들의 고단한 얼굴들을 주목하는 영화. 그럭저럭 만족스러웠다. 어떤 작품을 볼 때 그것이 구현하는 세계가 입체적이거나 현실적이거나 정교할 수 있는 건 제작비나 겉으로 보이는 세계의 규모만으로 판가름되지는 않는다. 세계관의 깊이를 알게 하는 건 전적으로 이야기의 흐름과 맥락, 그리고 캐릭터다. 그 캐릭터들이 저 세계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납득할 수 있는 일이며 그들이 어떤 행동에 나서는 일이 얼마나 마땅한 일인지. 다양한 언어들이 여전히 공존하는 (2020)의 세계를 보면서 (2012)나 (2013) 같은 작품들을 어렵지 않게.. 더보기
더 흥행하지 못해서 아쉬웠던 영화들: 사적인 목록을 고르자면 말이에요 최근의 영화 흥행 통계들을 지켜봐 오신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요즘 박스오피스는 숫자를 살펴보는 게 거의 의미가 없을 만큼 나날이 저조한 시간들의 연속이다. 특히 지난 주말(1/8(금)~1/10(일))은 10만 명도 채 되지 않는 관객 수를 나타내며 코로나 19가 본격화된 이후 가장 저조한 통계를 보였다. 1위인 (2020)는 3주 연속 주말 1위를 지키기는 했으나 간신히 누적 관객 수 50만 명을 넘어서며 힘겹게 기록을 쌓는 중. * 리뷰 '진실함을 믿는 한 여전히 우리는 영웅이 될 수 있다고': (링크) 코로나 19 상황이 호전되어 관객들이 다시 극장으로 걸음 하기 시작하지 않는 한, 1월 20일 개봉을 앞둔 픽사 애니메이션 신작 (2020) 역시 흥행을 보장할 수 없는 상태다. (은 이미 2020년 .. 더보기
순간을 포착하고 그것을 이내 흘려보낸 이의 삶: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2013) "그녀가 찍은 사람들과 풍경은 누구라도 찍을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을 찍기 전에 먼저 보아야 한다. 마이어는 탁월한 시선과 완벽한 기술을 겸비한 예술가였다. 그녀는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담았고, 평생 그 일에 몰두했다. 음악가의 수업을 빗대어 말하자면 이론상 우리도 마이어가 보았던 세상을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책 『비비안 마이어 - 나는 카메라다』(윌북, 2015)의 서문에서) 비비안 마이어는 현상된 필름만 10만 장, 미현상된 700롤의 컬러 필름과 2,000롤의 흑백 필름, 그리고 무수히 많은 쿠폰, 메모, 전단, 버스와 기차표 등을 생전 남겼다. 자기 목소리를 담은 수십 개의 녹음테이프, 150편이 넘는 8mm, 16mm 필름 영상도 물론이었다. 그것들은 모두 마이.. 더보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그리고 조제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츠네오는 뭔가를 깨달았다. 조제가 하는 말은 거짓이 아니라 하나의 바람이며 꿈이라는 것을. 그것은 현실과는 다른 차원으로 엄연히 조제의 가슴속에 존재하는 것임을." -다나베 세이코,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에서 (양억관 옮김, 작가정신, 2017) ⠀ 그때는, '좋은 이별'이라는 게 있을까에 관해 생각했었다. 그런 게 있다면 '나쁜 이별'도 마땅히 있는 것일 텐데 이에 대한 판단과 감회는 자신이 볼 수 없는 삶의 마지막 뒷모습을 남길 때까지도 내내 재정의되고 새로이 기억될 테니 좋고 나쁨 자체가 관건은 아니겠다. 다만 그것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와 그로부터 떠나가고 다가오는 것들이 겹겹이 교차하는 그 다음이 더 중요해지는 것이겠지.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더보기
10년의 시간이 담긴 영화 이 짧디 짧은 몇 분의 장면에는 지난 영화사의 여러 해와 달이 뒤섞인 채 담겨 있어. 이제는 자리에서 은퇴한 이름들. 이제는 이 세상을 떠난 어떤 이의 이름. 그리고 극장에서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의 감정들. 몇 번이고 들었던 대사를 그때 그 순간 다시 들을 때 전해져 오는 새로운 느낌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들. 분명 이 순간도 언젠가는 길가에 떨어진 숱한 낙엽들 가운데 하나쯤의 것처럼 희미해져버릴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떤 것은 끝내 잊지 않고 계속해서 기억해두고 싶은 감각들로 가득해,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떠올릴 때마다 너무도 생생한 것들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고, 그건 단 한 개의 장면만으로도 도저히 형언할 수 없는 것들의 합으로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 180..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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