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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적끄적

북티크 서교점의 영업 종료를 며칠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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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空間)은, 비어 있는 것들의 사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꼭, 사람이 채운다. 3년 전 봄날의 일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책과 영화에 관한 이야기들을 주고받던, 지금은 누나라고 부르는, 어떤 분에 의해 우연히. '북티크'라는 공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강남구 학동로 105. 나는 낯선 호기심으로 찾았던 논현역 근처의 그곳에서 열리는 독서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여름, 서교동에도 북티크가 생겼다. 그곳이 여는 날에도 나는 아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새 공간의 시작을 응원했다.


어느 날 '이런 공간이 있다'는 고마운 이야기에 소중한 공간을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많은 이들을 새로 만났다. 이제는 스쳐간 이들도 적지 않으나, 지금껏 닿아 있는 고마운 이들도 있다. 어느 날 '이런 모임을 해보면 어떨까'라는 고마운 제안 덕분에 나는 영화를 여러 사람들과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돌아보면 많은 날들은 문득, 우연히, 그런 단어들로 인해 가능했다. 그 가능들이 3년 전에는 짐작도 하지 못했던 오늘의 나를 만들어갔다. 결혼이며 장례 같은, 이곳에서 연이 된 이들의 몇 번의 경조사도 함께했다. 많은 떠나감을 겪었다. 그만큼 많은 만남도 대했다.


다음 달이면 북티크는 강릉으로 향하여, 새 터전을 닦을 준비를 하게 된다. 내게 더 오래 함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그러지 못하게 되는 일은 슬프거나 아쉽다. 그러나 내가 더 오래 함께이고 싶었던 공간. 그 사이를 대화와 관계, 취향들로 채웠던 공간이 사라지게 되는 일은 슬프다. 나는 무언가에 서투른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그저 잘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어떤 곳을 꾸준히 찾고 거기 오래 머무는 일 뿐이다. 사람에게도. 공간에게도. 오래 마음을 머물고 싶은 곳을 쉽사리 혹은 섣불리 찾지는 못하지만, 문득 다가오기 시작하면 가능한 온 마음으로 거기에 정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싶어 한다.


북티크 서교점의 영업 종료를 얼마 앞두고, 남은 적립금을 좀 쓰겠다는 구실을 삼아 며칠 만에 방문했다. 대표님, 이라기보다 그냥 형. 그간의 과정들을 알기에, 또 일련의 일과 변화들을 지켜봐 왔기에, 강릉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마음 닿는 힘껏 응원하고 싶다. (서울에서의 모임들은 별도 공간을 통해 계속 운영된다고 한다.) 오늘은 형에게 책 하나를 슬쩍 선물했다.


사람에게도 시대라는 게 있어서(있다고 믿어서), 나는 어떤 시대의 끝나감을 느낄 때 단지 슬프다고만은 표현할 수 없는, 일련의 감정들을 경험한다. 2018년 봄은 나에게 분명 그 사이에 놓인 계절이라고 여기고 있다. 내게 있어 그 시대의 끝남과 시작이란, 공간의 변화를 포함하는 것이다. 공간이 바뀌어도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남는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특별한 기약이나 약속, 혹은 의식 같은 것을 하지 않고 평소에 찾던 아지트에서 평소처럼 커피를 마셨고 책을 읽었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일이면 오월의 마지막 날이다. 그리고 목요일이다. 이제는 내게 없는 사람들을 잠시 생각했고, 집으로 향하는 동안에는 어떤 짧은 문장을 떠올렸다. "여전히 많은 것이 가능합니다."(이기주, [언어의 온도]) 나는 불확실함과 알지 못함을 조금 더 믿기로 했다. (2018.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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