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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적끄적

제주도라니, 동진아 - 2박 3일의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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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을 나서기 전, 하늘과 바다가 한데 보이는 창밖을 잠시 더 바라봤다. 제주공항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기사님은 내게 혼자 다니면서 심심하진 않았냐고 물으셨다. 앞서 쓴 다른 글에서는 '다음의 제주에 있게 된다면, 누군가와 함께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고 썼지만, 이 짧은 두 번의 밤이 좋았던 건 전적으로 혼자였기 때문이다. 렌터카 반납 시간과 김포행 비행기 체크인 시간 외에는, 그 무엇에도 쫓기지 않았다. 이미 10만 킬로미터를 넘게 달린 렌터카에 나는 200 킬로미터 남짓을 보탰다. 차와 내비게이션에 마음이라는 게 있다면 자꾸만 멈추고, 또 가라는 길도 안 따르는 차주가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을 것이다. 어느 방향으로 갈지는 차를 타면서 생각했고, 어디로 갈지는 가는 길에 정했다. 추천받았던 장소 중 한 곳에 들렀고, 서점에서는 책을 한 권 샀다. 노래를 들었고 몇 잔의 커피를 마셨다. 그건 서울에서도 하는 일들이었다.


공항으로 가기 전 호스트는 너무 챙겨준 게 없어서 미안하다고 하셨지만 나는 집처럼 지낼 수 있어서 더없이 좋았다고 했다. 또 방문하게 된다면 같은 곳에 머무르고 싶다고도 했다.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막연한 기약은 인사에 도움이 된다. 십오야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는 우리가 기약 없이 만난 이들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알기에 가능했다. 이름조차 알지 못했지만 마지막 밤은 그런 낯선 사람들로 인해 편안했다. 이곳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은 내가 여기 사는 사람이 아니라 여행자이기 때문에 온전히 그것들일 수 있었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었고 돌아가야 할 곳이 있었기 때문에 공간은 어디로든 열려 있었고 만남은 어디에서나 가능했으며, 혼자인 이상 어디에 가나 차분했다.


돌아오는 기내에서는 김연수의 책을 꺼냈다. "어떤 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누군가 고민할 때, 나는 무조건 해보라고 권하는 편이다. 외부의 사건이 이끄는 삶보다는 자신의 내면이 이끄는 삶이 훨씬 더 행복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심리적 변화의 곡선을 지나온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성장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면, 상처도 없겠지만 성장도 없다. 하지만 뭔가 하게 되면 나는 어떤 식으로든 성장한다. 심지어 시도했으나 무엇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조차도 성장한다. 그러니 일단 써보자. 다리가 불탈 때까지는 써보자. 그러고 나서 계속 쓸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자. 마찬가지로 어떤 일이 하고 싶다면, 일단 해보자. 해보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달라져 있을 테니까. 결과가 아니라 그 변화에 집중하는 것. 여기에 핵심이 있다."(『소설가의 일』, 문학동네, 2014, 98쪽.)


이 글은 김포공항에서 쓰고 있다. 이제 나는 집으로 가야 한다. 내일은 보러 갈 공연이 있고 모레는 새로 시작하는 모임이 있다. 다시 일을 해야 하고, 글도 써야 하고, 새 직장도 구해야 한다. 뉴욕에서의 일주일이든 제주도에서의 이틀이든 그 자체로 내 삶을 달라지게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 내가 모르는 방식으로 미래의 나를 맞이하게 할 것이다. 어디든 내가 발 붙이고 있는 이곳이 여기일 수 있는 건, 내가 갈 수 있든 없든 간에, 다른 곳들의 존재를 알기 때문이리라. 제주도구나, 가 아니라 제주도라니, 라고 기어코 적어보는 것에는 그런 이유가 있을 것이다.


(2018.09.05)


사진 포함 글은 (여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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