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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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는 집 근처 스타벅스에서 주문을 받는 파트너 분과 서로 알아보았다. 그는 700여 미터 정도 떨어진 다른 스타벅스에서 근무했던 분인데 한동안 다른 구에 있는 지점에서 일하다 얼마 전부터 이 지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얼마 전'이 거의 1년 전인데, 아주 규칙적으로 가는 곳은 아니지만 스케줄 근무를 하는 파트너 특성상 그간 한번도 요일과 시간이 맞지 않았을 수 있겠는 것. 마스크를 쓰기 전 얼굴로 마스크를 쓴 얼굴을 알아보는 일도 신기하지만 마찬가지로 그동안 한번도 만나지 못한 것도 그렇다. 서로가 서로가 맞는지 알아보고자 눈동자가 커지고 시선이 조금 더 마주치는 그런 일은 이미 흔치 않게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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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런 비일상의 순간은 무엇인가를 좋아하길 지속할 때 더 가까운 것이 된다. 예컨대 특정한 카페에 자주 걸음하는 일이라든지. 또 이를테면 같은 아티스트를 계속해서 사랑하는 일이라든지. 이것에 대해서는 지난달에도 쓴 바 있는데, 그때 "노래 한 곡에도 마음을 의탁할 수 있구나 하고 매 순간 깨달으면서 건너왔던 시절"이라고 표현한 건 그 시절들이 현재진행형인 채로 누군가와 함께인 것일 수 있다고 경험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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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계절이나 우연에 의해서만 일어나지 않고 마음에 의해서도 일어난다. '그때 거기에 있지 않았다면'과 같은 과거에 대한 가정을 하게 만드는 순간들이 있다. 그때 나는 마음이 어떠한지 제대로 자각하지는 않은 채로 마치 어떤 여지를 남기듯, 그러나 거기 확실히 이끌리듯 움직였다. 이것이 어디로 향하는지 조금 더 지켜보자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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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경험이 있듯, 타인과의 상호 관계를 통해서만 깨달아지는 순간이 있다. '그때 그랬다'라고 적는 일은 이내 '그때 그랬어'라고 말해주는 일이 된다. 마음을 따라가다 보니 어디선가 우리는 만났다. '혹시'나 '만약'이나 '어쩌면' 같은 부사들이 접두어가 되던 나날이 있었는데 모르는 사이 그것들은 지금으로 향하는 행로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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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 '그럴 수 있다' 혹은 '그럴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려 하는 편이다. 다시 말해 어떤 현상에 대해 빠르게 판단하는 편이기보다 몇 걸음을 디딘 후 혹은 그리하면서 조금씩 '그렇구나'에 가까워지는 편이다. 이 말은 여기가 처음부터 걸어오지 않아도 되는 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그러나 '행여 이 길이 아닐지도 몰라' 하는 짐작은 거기 직접 들어선 뒤의 감각을 이길 겨를이 없다. 그래서 소설가 양귀자는 일찍이 이렇게 썼다. "사랑하지 않고 스쳐 갈 수도 있었는데,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걸음을 멈춰준 그 사람이 정녕 고맙다고." (양귀자, 『모순』(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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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티켓의 예매가 열리는 오후 2시의 심박수에 대해서 쓰려다 보니 '이', '그', '저' 같은 지시어들이 늘었다. 알 수 없는 앞날과 숱한 불확실함들 속에서도. 적어도 이 길에 있는 한 나는 계속해서 당신과 우리를 지시할 것이다. 지금 여름 뒤의 가을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혹시나 하는 물음들에 계속해서 안도하며 끄덕이고 다독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가면서 결정할 일들 앞에서, 예비할 수 있는 확실한 행복이 시절을 건너게 해준다고도 믿는다. (2022.08.26.)
2022 심규선 단독 콘서트 [밤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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