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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로서 영화가 할 수 있는 일이 동시대의 현장, 그리고 그 시대에만 가능한 어떤 가치를 기록하는 일이라면 <물꽃의 전설>은 기록물로서 최상의 경험을 선사한다. 이대로라면, 만약 지금으로부터 제주 바다가 더 좋아지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고희영 감독은 사라져 가는 것들로 제주의 언어, 제주의 해녀, 그리고 제주의 바다를 모두 꼽는다. 이제는 현순직 해녀의 기억에만 생생히 남아 있는 '물꽃', 달라진 해양 생태계, 줄어드는 해녀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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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정말 '전설'이 되지 않도록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고 힘주어 말하지는 않지만, <물꽃의 전설>이 수중촬영으로 담아낸 경이로운 풍경과 다년간에 걸쳐 포착해 낸 밤의 달, 그리고 물질을 마치고 골라낸 해산물을 제작진에게도 나눠주는 할머니의 굽은 등 같은 것이 많은 울림을 생성해내기도 한다. 애써 무엇인가를 발화하지 않아도 단지 어떤 삶의 모습과 역사를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만으로 더 많은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어떤 스토리텔러는 진작에 간파하고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계속해서 카메라를 꺼낸다. 그리고 그로부터 탄생한 매 프레임이, 관객에게 말을 건다. (2023.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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