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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필자 및 평자들이 지적하거나 언급하는 것처럼 <오펜하이머>(2023)가 '1. Fission'과 '2. Fusion'을 각각 컬러와 흑백으로 촬영 및 연출한 것은 단순히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의 '시점'과 '스트로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시점'만을 구분하기 위한 것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한쪽은 아인슈타인이나 스트로스에 대한 발언 등을 토대로 볼 때 일면 거만하거나 오만한 면도 있는 듯하지만 다른 사상, 이론, 관점에 대해 배척하거나 편협하게 대하지 않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타인과 세상을 컬러로 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반면 다른 한쪽은 오펜하이머가 아인슈타인에게 자신에 대한 험담을 했을 것이라 거의 확신하고, 오펜하이머와 친하지 않았던 다른 과학자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줄 것이라 여기는 등 상대적으로 더 흑백의 세상을 사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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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컬러'와 '흑백'은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이야기임에도 2020년대를 살아가는 오늘에 여전히 유효하게 닿는다. 특정 인물(주로 연예인)에 대한 어떤 보도가 되면 그것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재판관이 된 것처럼 그 사람의 인물됨과 삶을 이미 평가한다. 온라인상에서 사람들은 차이와 다양성을 생각하기 전에 자신의 입장이 아닌 것을 틀린 것으로 간주한다. 논리적인 대화의 태도보다는 배척하고 폄하하는 언행이 앞선다. (이것이 꼭 '문자언어'가 아니라 말이나 영상을 통해 정보를 습득하는 풍조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더 이상 사람들은 타인의 언행에 대하여 그것을 선의로서 최선의 맥락으로 헤아릴 여유나 의지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매일이 모두가 모두를 상대로 치르고 치러지는 청문회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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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잘 만들어진 인물 전기를 보지 않았다 하더라도 위와 같은 생각은 계속했을 것이다. 오펜하이머를 위해 증언해 주는 사람들은 맞지 않으면 즉각 '손절'하는 요즘 사람들과 대비된다. 돌을 잘못 들추면 뱀과 마주할 수 있다던 '닐스 보어'(케네스 브래너)의 말처럼 그것은 단지 새로운 무기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여는 파동이자 연쇄반응의 시작이었을지 모른다. <오펜하이머>의 첫 장면은 (아마도 향수에 젖은 채) 바닥에 고인 물에 퍼지는 빗방울의 파동을 지켜보는 오펜하이머의 표정이다. 마지막 장면 그리고 여러 차례 제시되는 이미지 또한 빗방울 하나가 일으키는 파동들의 연속이다. 흑백의 세상에서도 '우리'는 컬러를 보는 눈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미약한 영화 관객의 한 사람일 뿐인 나는 다만 수십 가지 표정을 동시에 짓고 있는 킬리언 머피의 눈이 어디를 가늠하고 있었을지 미처 다 헤아릴 길 없어 어떤 역사는 반복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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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cosmos-j/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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