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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와 극장의 차이]
극장과 극장 밖의 자명한 차이 중 하나는 극장이 오직 창작자의 의도대로 관객이 영화를 만나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도 이 점을 언급했다. OTT와 달리 극장은 멈추고 다른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영화를 만드는 크리에이터 역시 현장에 자신의 감각을 오롯이 맡길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관객 입장에서는 집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조금 불편이 있을지 몰라도 크리에이터에게는 할 수 있는 일이 더 확장되도록 해준다는 것. 가령 주의가 분산되기 쉬운 집에서 보는 TV 시리즈 등은 시간을 계산해서 일정한 시간마다 특정한 자극이나 스펙터클을 안배한다든지 리듬을 고려하게 되기 쉬운데 어차피 멈추거나 페이스를 조절할 수 없기 때문에 극장 영화는 창작자가 원하는 스토리텔링 자체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맥락의 이야기였다.
[극장에서 '우리'가 함께한 순간]
영화인에게서 들을 수 있는 특별한 에피소드도 있었다. 예를 들어 <어느 가족>의 칸 영화제 상영 당시, 2천 석이 넘는 대극장인 뤼미에르 극장에서 안도 사쿠라(노부요 역)가 경찰에게 취조받는 신에서 그 누구도 기침조차 하지 않고 소리 없이 스크린에 온전히 집중하고 있었던 그 순간.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그때 다시 한번 안도 사쿠라가 얼마나 대단한 배우인지 상기했다고 한다) 그것은 영화가 관객과 시간을 공유하면서 극장이라는 공간을 발판 삼아 힘을 얻는 순간이었다. 김소미 기자는 故류이치 사카모토의 곡 'Aqua'가 흘러나오던 <괴물>(2023)의 엔딩크레디트 부분에서 뤼미에르 극장 내의 기립 박수가 마치 고인을 향한 헌사를 담은 박수처럼 느껴졌던 순간도 전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코로나19가 한창으로 어려웠던 시기 지역 사회에서 영화인들과 주민들이 기금을 모아 지역 극장들을 후원했던 사례 등을 공유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실제로 일본에도 여러 지역 영화관들이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문을 닫기도 했고, 감독 자신이 대학 시절부터 함께했던 대학 인근 극장들도 지금은 네 곳 중 한 곳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그곳은 여전히 필름으로 영화를 상영한다고 한다). 이번 행사와 같은 '관객과의 대화' 문화가 거의 없었던 장편 데뷔 초기 경험도 언급했는데, 시카고에서 열렸던 한 영화제에서 <환상의 빛>(1995)이 상영되었을 때 1시간 정도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주어졌는데 예정된 시각이 지나고도 많은 관객들이 영화 이야기를 원해 근처의 카페로 이동해 1시간가량을 더 대화했던 적도 있었다고. 그러니까 110분 정도인 <환상의 빛>의 상영시간보다도 더 긴 시간을 영화 이야기에 할애했던 것이다. 그 외에는 자신이 영향을 받았던 극장에서 만난 다른 영화인들의 영화 - 예를 들어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영화나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영화 - 에 대한 언급, 디지털이 아닌 필름 촬영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한-일 순차통역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화와 영화산업에 진심인 영화인들이 주고받는 대화에 90분은 체감상 한없이 짧은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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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씨네큐브 25주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의 대담 | 4월 29일(화) 저녁 씨네큐브 광화문 1관에서 열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의 '스페셜 토크 - 우리가 극장을 사랑하는 이유' 행사의 예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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