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썸네일형 리스트형 글이 적힌 종이는 두 가지 시간을 살게 한다 글이 적힌 종이는 두 가지 시간을 살게 한다. 하나는 과거, 하나는 미래. 나는 그처럼 출판할 목적이 아니라 혹은 좋아요 버튼이 목적이 아니라 서랍 속에 고이 넣어둘 글을 쓰는 사람에게 애정이 있다. 돈과 시선과 관계되지 않은 자기만의 창조적인 일을 해보는 것 자체가 자율적인 인간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쓰는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표현할 단어를 모색하게 된다. 오늘 있었던 일을, 감정의 복잡함을 어떤 단어로 표현할지 자기가 결정한다. 어떤 문장으로 끝맺을지도 자신이 결정한다. 내적인 자유다. 독립성을 무엇보다도 중시한 모네가 수련과 정원 호수에 비친 나무의 그림자를 그리면서 “여기서는 적어도 남들과 닮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좋네. 내가 경험한 것만 표현하면 되니까”라고 한 말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 더보기 유계영 시인 산문집 '꼭대기의 수줍음'(2021, 민음사) "이상하지 않은가. 언제나 마음이 있다는 거 말이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할 때는 물론이고, 마음이 있는 줄도 모르고 허겁지겁 밥을 먹고 깊숙한 혓바닥을 닦을 때에도 나에게 마음이 있다는 거. 더욱 곤란한 것은 나에게만 있는 줄 알았던 마음이 너에게도 있다는 사실이다. 너에게 언제나 마음이 있다. 네가 마음이 쓸쓸하다고 말할 때는 물론이고, 너에게 마음이 있는 줄도 모르고 내가 내 마음을 뾰족하게 세울 때에도 너에게 마음이 있었다. 각자에게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이후의 인간은, 분명히 다른 말을 구사하기 시작한다. 침묵의 내부에 좁은 골목들이 자라기 시작한다. 작은 화분에 담긴 커다란 식물처럼 혀가 묶이기 시작한다." -유계영, 『꼭대기의 수줍음』 (민음사, 2021, 230쪽) ⠀ 책을 읽을 시.. 더보기 책의 말들, 김겨울 그렇다고 해서 책이 외로움을 해결해 주는 건 아니다. 그냥 친구 삼으면 좋다는 말이다. 친구야 하나라도 더 있으면 덜 외롭고, 게다가 책은 뭐 자기 할 일이 있어서 내 말을 들어 주기에 너무 바쁘거나 오늘 애인과 약속이 있어서 나를 못 만나거나 만날 때마다 거나하게 취해야 하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같은 맥락에서 영화도, 드라마도, 유튜브도 벗 삼기 좋은 친구인 건 마찬가지다. 차이가 하나 있다면 이런 영상 매체들과는 대화를 나누기가 좀 어렵다는 것인데, 그러니까 이 친구들은 내가 뭘 말할 틈을 안 주고 자기 말만 자꾸 하는 것이다. 아니 잠깐만, 잠깐만 내 얘기 좀 들어 봐, 라고 말해도 도무지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간다. 나는 그게 너무 낯설어서 20대 초반까지 영화를 잘 못 봤다. 우리 이렇게 합의 .. 더보기 클래스101 - [취향이 더 깊어지는 영화 에세이 쓰는 법] 오픈 '클래스101'에서 클래스 개설을 위한 수요조사 페이지를 오픈했습니다. 클래스 제목은 이에요. 클래스101 '취향이 더 깊어지는 영화 에세이 쓰는 법' 페이지 링크:https://class101.page.link/DmCf 본 페이지를 통해, 일정 수량 이상의 '응원하기'가 있어야 클래스가 개설됩니다. 영화에 관한 글쓰기를 해보고 싶으시거나 궁금증이 있으시다면, 혹은 블로그 등 기록을 해보고 싶지만 어려움이 있으셨다면, 제 이야기가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온라인 클래스를 개설해보고자 합니다. '응원하기'로 참여해주시면 소중한 힘이 됩니다. - 이 클래스에서는, 주로 아래와 같은 내용을 다룹니다. [내가 본 그 영화, 더 오래 기억하는 방법] 영화 티켓이나 굿즈보다 더 오래 남는 건 그 영화에 대한 .. 더보기 '비와 당신의 이야기'와 '라스트 레터' 원고를 쓰느라 영화 속 ‘편지’에 대해 돌이켜 생각했다. 수신인을 잃은 편지는 어디로 가게 되나. 그 자리가 어디이고 누구인지를 말해보고 싶었다. 받는 이가 이제는 세상에 없거나 가 닿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해도 이들의 서신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쓰이고 읽힌다. ‘쿄시로’가 ‘미사키’ 생각에만 갇혀서 다음 소설을 쓰지 못하는 것 같다고 하자 ‘유리’는 언니 이야길 계속 써 보라고 말해준다. 언니인 척하면서 편지 쓰기를 계속하다 보니 마치 언니 인생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그러니 누군가가 어떤 사람을 그리워한다면 그 사람은 죽은 뒤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지 않겠냐고. ‘영호’가 우산 만드는 사람이 되고 ‘쿄시로’가 소설 쓰는 사람이 된 건 그러니까 편지의 연장선이다... 더보기 '걸어도 걸어도' - 늘 이렇다니까. 꼭 한 발씩 늦어. "아버지도 어머니도 일흔을 넘겼지만, 아직 그때는 건강하실 때였다. 언젠가 그분들이 먼저 돌아가시리라는 것은 물론 알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언젠가’였다. 구체적으로 내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는 상황을 상상하지는 못했다. 그날, 무언가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나는 이를 눈치채고 있었다. 그럼에도 모른 척했다. 나중에 분명히 깨달았을 때는, 내 인생의 페이지가 상당히 넘어간 후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미 돌아가신 뒤였기 때문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걸어도 걸어도』 ⠀ 한 시절이 정녕 지나간 것이 맞는지 거기 내내 서서 소실점을 바라보다가도 할 일을 하고 갈 곳을 다시 걸어가는 날들. “늘.. 더보기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 김민철 , 김민철 (미디어창비, 2021) 광고회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남자 이름이지만 엄연히 여자”(저자 소개 중) 현재 시점의 저자가, 과거 시점의 저자로 돌아가 현재 즉 과거 시점에서의 미래를 지시하며 저자 본인은 물론 편지마다의 수신인들, 그리고 독자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 ‘그날 그때 거기’의 기록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와서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편지를 받는 이에게 어떤 간접 경험으로 다가갔으면 하는지에 대한 고려가 담겨 있는 기획이라고 생각했다. : 김소연 시인, 이병률 시인 등 주로 시인이 쓴 여행산문집들을 접해보았는데, 광고업계 종사자가 쓴 여행산문집을 처음 읽어봤지만 서로 비슷한 면이 있다고 느낌. 생각과 감정을 함축적인 언어에 집약하고 그것을 미학적으로 다듬는 글쓰.. 더보기 앞으로 올 사랑, 정혜윤 http://m.yes24.com/Goods/Detail/96095525앞으로 올 사랑2020년,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답해야 한다_코로나와 기후위기 이후 완전히 달라진 삶, 달라져야 할 삶 앞에서2020년은 인류사에 전례 없는 혼란으로 기억될 것이다. 2019년 1m.yes24.com 최근에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자신의 일상적인 식습관이나 소비습관 등을 바꾸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과거에 하던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 눈에 그들은 주의력과 절제야말로 우리 삶의 아름다움의 일부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앞으로 올 시대를 위해서라면 어떤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이 만든 삶의 원칙을 지키는 것에 해방의 가능성이 있고, 그것이 일상에 활기와 아름다움과 .. 더보기 나보다 근사한 영화들 기록의 대상이 될 만큼 좋았던 영화들을 찬찬히 열어 보면 거기에는 하나라도 빠져선 안 될 장면들, 그 인물이 바로 그 상황에서 반드시 해야만 한다고 믿어지는 말들, 영화가 아닌 인생의 배경음악이 될 법한 스코어들, 다른 방향과 각도와 거리에서 보는 것을 상상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카메라의 바로 그 시선 같은 게 있다. 영화와 달리 나는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거나 별로 필요하지 않은 글을 쓰거나 생의 유한함을 잊고 게으름을 부릴 때가 많지만 영화들은 그렇지 않다. 끝나야만 하기 때문에 시작된 순간부터 한 프레임도 쉬지 않고 오직 나아간다. 가장 끄덕일 수 있는 방식으로, 혹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있는 그 영화들은 영화가 끝나고 난 뒤의 나를 그 영화를 보기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도록 만든다... 더보기 김동진의 말 00 - "가면서 결정하자고." _ "가면서 결정하자고." (I guess we can decide along the way.) 영화 (2017)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어디를 향하여 이어질지 아는 채로 걸어가는 사람이 있을까. 수 십 수 백 번도 더 가 본 집 앞 편의점과 집 사이의 길이라든지 출근길 지하철역 출구를 나선 뒤부터 회사 앞까지의 길 같은 것이야 알겠지만 그건 누적되고 반복되어 온 경험과 감각으로 인한 것일 테고 인생의 오늘과 내일 사이의 길에 관해서라면 삼천 년 뒤의 일까지도 미리 '기억'하는 영화 (2016)의 '헵타포드' 종족이 되지 않는 한 예지 할 도리가 없다. 나는 헵타포드족이 아니라 그냥 휴먼이어서. 명백히 그건 인간의 한계이자 굴레와도 같은 것이겠지만 지나고 보면 그때는 모르는 채로 일단 걸어보겠다고 생각.. 더보기 이전 1 2 3 4 5 6 ··· 2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