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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적끄적

10년의 시간이 담긴 영화 이 짧디 짧은 몇 분의 장면에는 지난 영화사의 여러 해와 달이 뒤섞인 채 담겨 있어. 이제는 자리에서 은퇴한 이름들. 이제는 이 세상을 떠난 어떤 이의 이름. 그리고 극장에서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의 감정들. 몇 번이고 들었던 대사를 그때 그 순간 다시 들을 때 전해져 오는 새로운 느낌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들. 분명 이 순간도 언젠가는 길가에 떨어진 숱한 낙엽들 가운데 하나쯤의 것처럼 희미해져버릴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떤 것은 끝내 잊지 않고 계속해서 기억해두고 싶은 감각들로 가득해,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떠올릴 때마다 너무도 생생한 것들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고, 그건 단 한 개의 장면만으로도 도저히 형언할 수 없는 것들의 합으로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 180.. 더보기
세계를 최대화하는 사람 음악을 듣거나 습득하는 주 경로가 멜론과 애플 뮤직과 유튜브 프리미엄인 데다 대부분은 소장용으로 구입/다운로드한 MP3 파일을 기기에 넣고 듣는 편이라 음반은 잘 사지도 않고 그걸로 음악을 듣는 일은 더더욱 없다고 할 수 있다. 블루레이 플레이어로 CD 재생이 가능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수고를 들이지는 않는 것인데, 하나 둘 생겨가는 음반을 보고 있자니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도 부지불식의 일인가 싶어 지기는 한다. 돌아보면 만년필을 쓴 것도 선물 받아서였고 블루레이 플레이어를 사게 된 것도 시나리오 번역본을 읽자고 케네스 로너건의 (2016) 블루레이 시나리오 박스판을 구입했기 때문이었다. 테일러 스위프트 8집은 해외판으로 사고 나서 엽서와 포스터 받자고 국내 라이선스반을 후에 추가로 샀고 선물.. 더보기
관객의 취향 [써서 보는 영화] 9월 온라인 클래스를 마치며 2년 동안 진행해 온 [써서 보는 영화]를 9월에는 처음으로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온라인 진행을 위해 Google Meet을 처음 써봤고 프린트로 과제 출력본을 나눠 읽고 합평하는 일과 같이 평소 오프라인으로 하던 일들을 온라인으로 대체하느라 방법을 고안하고 실행해보아야 했다. 4주의 시간은 그래서 스스로에게도 여러 방식으로 응원과 격려가 되었다. 김연수의 말처럼 매일 쓴다고 해서 반드시 잘 쓰게 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더 나은 인간이 된다는 사실만은 장담할 수 있다. 글쓰기는 전적으로 혼자의 일이지만, 주변에 누군가가 함께 그것을 혼자의 방식으로 지속하고 있을 때, 그 사실이 내게 어떤 영향을 준다. 4주 8시간에 걸쳐 전한 이야기들이 쓰지 않던 사람을 쓰게 하고 쓰는 사람을 계속 쓰게 하는 경험이.. 더보기
덕질러의 길 - 시인의 말씀 초고 피플과 나눴던 대화에서 글감 하나를 기록했었다. 어떤 순간에 아름다움을 느끼는가에 관한 것. 그게 마침 추석 연휴를 보낸 10월 초이기도 해서 문학동네에서 나온 캘린더 사진을 같이 올렸는데, 사진에 나온 시인께서 날 팔로우 하고 계셨던 모양인지,,, 직접 메시지를 주셨다. (!) https://www.instagram.com/p/CF66ZXrFxeQ/ Instagram의 김동진님: “영화 (2012)에는 중년이 된 '파이'가 자신을 찾아온 작가� 좋아요 60개, 댓글 2개 - Instagram의 김동진(@cosmos__j)님: "영화 (2012)에는 중년이 된 '파이'가 자신을 찾아온 작가에게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 뒤 "어느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십�� www.instagram.com ​ ​ 이.. 더보기
세상의 아름다움은 어디서 오는가: 사적인 이야기에 관해 영화 (2012)에는 중년이 된 '파이'가 자신을 찾아온 작가에게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 뒤 "어느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십니까?"라고 묻는 장면이 있다. 길고 자세하지만 믿기 어려운 버전 하나와, 짧고 명료하지만 잔혹하고 상상의 여지가 없는 버전 하나. 고민하던 작가는 한쪽을 택한 뒤, 그게 '더 나은'(better)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서의 '나음'이란 물론 좋고 나쁨이 아닐 것이다. '파이'가 들려준 두 이야기는 모두 다른 누구도 증명하거나 규명할 수 없이, 오직 '파이' 본인에게만 존재하는 이야기다. 작가가 둘 중 어느 한쪽이 아닌 다른 한쪽을 택한다는 건 그 하나를 고른 계기에 그가 세상을, 이야기를,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가 작용했음을 뜻한다. 한 이야기를 읽은 '나'는 그.. 더보기
아 테스형! - 평화로운 영주에서 맞는 10월 창측 좌석만 예매가 가능하고 입석도 판매하지 않아 청량리역에서 영주역으로 향하는 무궁화호는 한산했다. 사이 좋게(?) 창가에만 앉은 사람들이 잠을 자거나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각자의 할 것들에 골몰해 있었다. 이 무렵이면 루틴처럼 김애란의 을 펼친(넘긴)다. '입동'을 제일 좋아하지만 오늘은 '침묵의 미래'를 다시 읽었다. 영주역에는 먼저 도착한 형이 자기 차를 타고 나와 있었다. 분위기가 딱히 명절스럽지 않은 것도 있지만 올해 여러 일들로 집에 좀 자주 다녀가서, 오늘도 그냥 평소처럼 밥 먹고 과일 먹고 티비 봤다. ([1인분 영화] 원고 퇴고 조금 했다) 며칠 전부터 버스 광고 같은 데에서 많이 보였던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가 KBS에서 하고 있었다. 엄마가 보고 있는.. 더보기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Notorious RBG 겨우 영화로나마 펠리시티 존스가 주연한 (2018)과 다큐멘터리 (2018)를 봤을 뿐이니 (마음산책에서 나온 『긴즈버그의 말』(2020)을 구입하기는 했지만) 그의 삶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수는 없다. 거의 모른다고 해야만 한다. 성별에 근거한 차별이 위헌임을 미국 연방대법원이 처음으로 인정하게 만든 사람. 남성의 입학만 허용한 군사학교에 대해 양성 평등권 침해라고 판결한 사람. 연방대법관 인준 청문회(1993년)에서 "정부가 여성의 선택을 대신하는 건 여성을 자신의 선택을 책임질 완전한 성인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라고 말한 사람. 누군가 자신의 뜻을 지지 않게 만들고 다른 사람의 뜻을 존중받도록 만들 때, 세상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난다. 사놓고 제대로 시작도 하지 못한 몇 권의 책들을 올려다.. 더보기
문화예술의 가치에 관한 짧은 생각: 어떤 행복은 크고 확실하다 (2018), (2017), (2013) 등으로 알려진 배우 채드윅 보스만이 얼마 전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망 소식에 영화계 관계자들과 동료는 물론 수많은 사람들이 애도했던 건 단지 그가 스타였기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단지 그가 출연한 영화를 재미있게 즐기는 것을 넘어 스크린 바깥에서의 직업인으로서의 면모에 호감과 매력을 느끼고 그의 커리어를 응원했다. 스타의 팬은 그의 새로운 작품이 나올 때 기대감을 갖고 그것을 열렬히 함께한다. 국적을 불문하고 배우나 가수를 좋아한다는 일에 관해 말하는 건 별로 특별하지도 새삼스럽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취미와 애호의 범주를 넘어 그것이 삶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하면 어떨까. 사소하게는 영감의 원천일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생존 자체에.. 더보기
레이디 가가의 2020 MTV VMA 수상소감 중에서 메모 레이디 가가도 테일러 스위프트도 BTS도 상을 받은 이번 MTV VMA의 수상소감들과 라이브 공연들을 가만히 보고 듣고 있었다. 비대면과 거리두기의 시대에 문화 예술이 줄 수 있는 이 행복감, 안도감, 감사함.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이번 어워드의 공연 내내 자신은 물론 댄서들도 처음부터 끝까지 마스크를 착용한 채였던, 그리고 수상 소감(들) 중에도 의상은 바뀌었지만 마스크를 계속 쓴 채였던 레이디 가가의 Tricon Award 수상 소감을 듣고 그 내용을 옮겨두려다가 그냥 원어 그대로를 기록해본다.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용기와 영감을 줄 수 있는지에 관해 생각하면서. "Take a moment for rewards yourself for your bravery. Thi.. 더보기
팬데믹에 방송 콘텐츠가 대처하는 방식: 미국 NBC 드라마 '블랙리스트' 시즌 7 피날레 NBC 드라마 는 코로나 19로 제작이 중단되었던 5월, 일곱 번째 시즌의 피날레(Episode 19)를 애니메이션화 해서 공개했다. 기존 촬영분에 나머지 분량은 배우들이 목소리 연기를 하고 장면은 촬영 대신 그림으로 그려버린 것. 단지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만화책을 보듯 '1막', '한편 호텔에서는' 같은 자막이 코믹북처럼 삽입돼 있다. 이 에피소드의 앞부분과 뒷부분에는 주연 배우들이 출연해 시청자들에게 건강과 안전을 당부하는 이야기, 그리고 소중한 사람과 보내는 시간을 마련하고 이럴 때일수록 사랑을 잃지 말라는 이야기를 전한다. 한 가지도 잊지 않았다. 여덟 번째 시즌으로 곧 돌아오겠다는 이야기. 이번 시즌7 19화의 애니메이션은 LA와 런던 등에 이르기까지 각지에서 재택근무하는 제작진과 스태프들이 완..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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