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28x90
반응형

책 속에 머문 이야기

캐시 박 홍, '마이너 필링스' 메모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를 잘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 우리 자신을 잘 믿지 못한다. 그래서 목소리를 너무 크게 낸다고, 자존심이 너무 세다고, 혹은 야심이 너무 과한 게 아닐까 자책한다. 샤마는 그 시에서 자기 가족의 자존심을 이카로스에 비유한다. "보라, 우리가 하늘에 너무 가깝게 솟아올랐다가 어떻게 추락했는지. 추락이 우리를 끝장내지 못할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았을까. 여기 떨어지고, 저기 떨어지고, 비명을 지르며. 오 허세부리디지, 너희 생각만큼 나쁠 리는 없으니.""(47쪽) "이코노미석으로 비행하며 고생해본 사람은 누구나 다오의 상황에 공감했다. 언론은 다오를 "승객", "의사", "사람"으로 지칭했으며, 애초에 그의 아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쟁점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취급됐다. 이 드.. 더보기
마음산책 - 황석희 번역가 특강 (...)그건 단순히 대사나 내레이션을 잘 옮기기만 하면 되는 일이 아니겠다. 예를 들면 (2022)에 인용된 중국 청대의 협사 소설 속 구절과 같은 것을 찾아내는 건 성실하기, 의심하기,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선택과 판단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생각은 바뀔 수 있고 완벽한 정답이 있는 영역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거기 멈춰 있지 않고 나아가는 게 직업인의 자세일 것 같다.⠀번역은 창작에 부수적으로 수반되는 '제2의'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별개의 결과물(2차 창작물)이라는 이야기에 동의했다. 제한된 분량과 길이 안에 외국어 사용자의 발화를 관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정확하면서도 뉘앙스를 살려 옮겨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직업의식과 전문성을 토대로,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조율하면서도 창작자의 의도.. 더보기
윤혜은, '매일을 쌓는 마음'(2024) “책방이 내가 사로잡힌 것을 대수롭지 않게 만들거나 가려주지는 않는다. 책방에 언제나 내가 직면한 상황이나 감정보다 중요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책방 안쪽의 일들은 책방 바깥의 사정보다 대체로 아기자기하다. 그런 말랑한 데서 오는 힘이 있는 걸까. 업계 밖 사람들에게 책방은 낭만보다 30퍼센트의 수익으로 굴러가는 곳이라고 짠내 나게 말하지만 솔직히 내가 발붙이고 있는 현실 중 가장 푹신하다는 점에서 나를 적당히 내던지기 좋은 곳이 된다. 네모반듯한 공간에 네모난 책들로 빼곡한 책방은 의외의 탄성을 지녀서 그곳으로 들어서는 나를 매일 한 번씩 튕겨낸다. 처음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불안한 설렘, 낯선 떨림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책방을 운영하는 해가 거듭되어도 그 ‘약간의 들뜸’.. 더보기
SF 작가 어니스트 클라인의 소설 '레디 플레이어 투(Ready Player Two, 2024)' 리뷰 (...) 3. 과 1편으로 큰 성공을 거둔 원작자 어니스트 클라인이 직접 집필한 속편은 그 존재만으로 세계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기 충분한 작품이었다. 태생적으로 속편은 전편과의 비교를 당하는 숙명을 타고난다. 그런 점에서 1편에서 어니스트 클라인이 각종 대중문화 레퍼런스를 방대하게 풀어나가는 방식은 신선하고도 기발했던 반면, 에서 그 이상의 레퍼런스를 기대한 독자에게는 일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면도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그 영향력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톨킨이 자주 등장하고 그 서술 방식 또한 1편의 것을 답습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또 하나 중요한 차이점은 이제 웨이드 와츠는 트레일러 빈민촌에서 겨우 생계를 이어가는 청년이 아니라 오아시스 그리고 오아시스를 운영.. 더보기
'번역: 황석희'(2023, 달 출판사) (...) 원인 내지는 배경을 여러 가지로 짐작할 수 있다. 막연한 반지성주의, 리뷰/비평에 대한 몰이해, 극단화/이분화된 문화 풍조, 문해력, 무엇보다, 타인에 대한 존중의 결여. 해당 영화평을 쓴 이에 대한 존중을 결여한 이들의 볼멘소리를 애써 귀담아 존중해주고 싶지는 않지만, 글쓰기를 10년 이상 해온 입장에서는 이런 생각도 해본다. 어차피 글이라는 건 본래 읽거나 쓰는 이들이 아니라면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쓰나 마나 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가령 황석희 번역가의 위와 같은 문장을 영화를 애호하는 많은 이들이 일독했으면 좋겠다고 강하게 생각하지만, 읽지 않는 이들에게는 닿지 않을 것이다. 쓰는 일을 고집하는 이의 일종의 오만처럼 들릴지 모르겠으나, 그만큼의 고민와 숙고를 거쳐본 일.. 더보기
규 챌린지 시즌 1: Loving Myself - 15. <밤의 끝을 알리는> 한 페이지 or 한 챕터 필사해보기 15. 한 페이지 or 한 챕터 필사해보기 "나의 사랑스러운 벗에게. 우리를 떠올리면 내 마음이 덥다. 나의 지난날과 오늘 당신의 고독이 마치 거울처럼 닮아 있는 듯해 더욱 애달프고 섧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도 있다. 길을 잃었다 생각했을 때조차 사실은 길 위에 있었음을 알게 되는 것처럼. 충분한 만큼 울어도 좋다. 눈물을 가두고 모은들 바다라도 되겠는가? 필요한 만큼 아파해도 좋다. 우리는 부러진 다리로는 멀리 가지 못한다. 통증을 느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억지로 일어서기가 아니라 치료와 회복인 것이다. 그리고 당부컨대 너무 오랫동안 두려워하지는 마시라. 길은 걸음 뒤에 자연히 나는 발자취일 뿐, 우리가 긍긍(兢兢)하며 찾아 나서야 할 보물도, 어쩌면 그 무엇도 아니다. .. 더보기
이유운, 사랑과 탄생 “어린 시절에는 사건이 많았다. 직선적인 사유와, 그 사유에 최적화된 시간관념이 확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사건은 나를 둘러싸고 지속되었다. 나를 에워싸고 있는 영사기 사이에서, 움직이는 이미지는 오직 나였다. 나만이 움직였다. 그리고 움직이는 나를 바라보는 어른들, 그들의 시선이 나를 따라 작동했다. 나와 타인의 세계 사이에 사랑의 시선이 있었고, 그 시선이 마주치거나 엇갈릴 때 그 흔적을 따라 궤도가 탄생했다. 그리고 궤도가 천천히 일직선으로 맞춰졌을 때, 나는 그 사건들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이유운, 『사랑과 탄생』에서 (1984BOOKS, 2023, 10쪽) http://www.yes24.com/Product/Goods/118265878 사랑과 탄생 - YES24 이유운 시인은 첫 번.. 더보기
이나다 도요시,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대사 없이 흘러가는 10초간의 장면에는 ‘10초간의 침묵’이라는 연출 의도가 있다. 침묵에서 비롯된 어색한, 긴장감, 생각에 잠긴 배우의 표정은 모두 만든 이가 의도한 연출이다. 그렇기에 그 장면은 9초도 11초도 아닌, 10초여야만 한다.” -이나다 도요시 지음,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황미숙 옮김, 현대지성, 2022, 16쪽에서 ⠀ 일본에서도 일찍이 이른바 ’결말포함 영화리뷰’ 성격의 ‘패스트 무비’로 불리는 유튜브 영상 콘텐츠가 화두가 되었다. 이미 2021년 11월에 저작물 관련법 위반으로 인한 유죄 판결이 내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에서 저자는 이것의 위법성이나 윤리관 결여, 저작권자의 피해 등에 앞서 그러한 영상들에 많은 니즈가 있었다는 사실 .. 더보기
김혜리, 묘사하는 마음 “영화를 충분히 침전시켜 결론을 품고 쓰기 시작한 기억은 거의 없다. 내게 해석은 묘사의 길을 걷다 보면 종종 예기치 못하게 마주치는 전망 좋은 언덕과 같았다. 묘사하는 마음이란, 그런 요행에 대한 기대와 ‘아님 말고. 이걸로도 족해’ 하는 태평스러운 태도를 포함한다. 묘사는 미수에 그칠 수밖에 없지만, 제법 낙천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11쪽) ⠀ “그러나 확실한 것은, 빼어난 전문 스턴트맨이 즐비하고 뭐든 디지털 기술로 그려낼 수 있는 시대에 톰 크루즈는 배우가 직접 감행하는 액션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차이와 그것이 객석에 가져다주는 쾌감의 차이를 믿고 실천한다는 점이다. 에는 왜 좀 더 간단한 방법으로 작전을 수행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에단 헌트가 “그렇지만 나는 더 나은 방법으로 하고 싶다”고 답하.. 더보기
세 번의 여름 동안 만난 소설가 김애란의 산문: '잊기 좋은 이름'(2019)과 서점 리스본 (...) 김애란의 산문을 여름마다 꺼내 읽고 있다. 이번에는 그가 동료 소설가 윤성희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을 오래 읽었다. 오직 소설을 쓴다는 사실로 인해 서로 연결된 사람들. 책에는 김연수, 편혜영, 박완서 등 다른 소설가들의 이름도 언급되는데, 공통적으로 느끼게 되는 건 그들이 그들의 소설들과 닮아 있다는 점이다. 쓰는 사람들이 다른 쓰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주하는 종류의 연대감처럼, 쓰는 이는 자신이 쓰는 글을 결국에는 닮게 된다고도 생각한다. 글쓴이의 손을 떠난 글들이 손을 떠난 뒤에도 계속 존재하고 시간이 지나서도 거기 있어 작품과 작가는 느슨하게나마 연결되어 있기를 지속한다. 내게 김애란은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것과 "그렇게 평범한 사물과 .. 더보기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