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28x90
반응형

분류 전체보기

오직 그게 반복된다는 사실 - 우다영,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오직 그게 계속 반복된다는 사실이잖아. 반복되는 것의 의미가 아니라 반복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을 수도 있지. 물론 나는 과학자가 아니고 요리사니까 반복해서 요리를 할 뿐이야. 너에게 오늘 아침은 김치볶음밥을 해 주고 저녁은 된장찌개를 해 주는 거지. 다른 날 이런저런 다른 음식들도 먹겠지만 어느 날엔 또다시 김치볶음밥과 된장찌개를 먹을 거야. 그땐 김치볶음밥에 네가 좋아하는 달걀프라이를 올리거나 신선한 잎채소를 가니시로 올릴 수도 있고 된장찌개가 조금 짤 수도 있고 그래도 맛있게 먹을 거고 이런 날들이 반복되겠지." (124쪽) -우다영,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 『소설 보다 : 가을 2020』 ​ ​ 이 대화는 대체 언제부터 나누고 있었을까? 지금 하고 있는 이 생각은 .. 더보기
순간을 포착하고 그것을 이내 흘려보낸 이의 삶: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2013) "그녀가 찍은 사람들과 풍경은 누구라도 찍을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을 찍기 전에 먼저 보아야 한다. 마이어는 탁월한 시선과 완벽한 기술을 겸비한 예술가였다. 그녀는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담았고, 평생 그 일에 몰두했다. 음악가의 수업을 빗대어 말하자면 이론상 우리도 마이어가 보았던 세상을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책 『비비안 마이어 - 나는 카메라다』(윌북, 2015)의 서문에서) 비비안 마이어는 현상된 필름만 10만 장, 미현상된 700롤의 컬러 필름과 2,000롤의 흑백 필름, 그리고 무수히 많은 쿠폰, 메모, 전단, 버스와 기차표 등을 생전 남겼다. 자기 목소리를 담은 수십 개의 녹음테이프, 150편이 넘는 8mm, 16mm 필름 영상도 물론이었다. 그것들은 모두 마이.. 더보기
[1인분 영화] ‘천공의 성 라퓨타’ – 본 적 없는 세계를 그리워하기(중) (2020.12.18.) (...) 는 주 배경이 하늘이지만 실은 ‘땅’을 강조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부유하는 ‘라퓨타’는 그냥 바위 같은 걸로 된 섬이 아니라 과거에 문명이 번성했던 곳인 만큼 대륙의 형태를 하고 있고 말하자면 땅 위의 하늘 위의 땅이 또 있는 이미지를 나타냅니다. 그 땅에는 또 땅에서 보는 하늘이 있겠지요. 말하자면 땅-하늘-땅-하늘의 구조로 된 의 공간은 그래서 천상의 시점보다는 지상의 시점이 좀 더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주인공 중 한 명인 ‘시타’가 ‘라퓨타’ 사람이지만 주로 지상에 사는 ‘파즈’의 성장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가 짜여 있거든요. (...) (2020.12.18.) ⠀ [1인분 영화] 12월 여덟 번째 글은 '본 적 없는 세계를 그리워하기'(중)라는 제목으로 영화 (1986)에 관해 썼다. 전.. 더보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그리고 조제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츠네오는 뭔가를 깨달았다. 조제가 하는 말은 거짓이 아니라 하나의 바람이며 꿈이라는 것을. 그것은 현실과는 다른 차원으로 엄연히 조제의 가슴속에 존재하는 것임을." -다나베 세이코,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에서 (양억관 옮김, 작가정신, 2017) ⠀ 그때는, '좋은 이별'이라는 게 있을까에 관해 생각했었다. 그런 게 있다면 '나쁜 이별'도 마땅히 있는 것일 텐데 이에 대한 판단과 감회는 자신이 볼 수 없는 삶의 마지막 뒷모습을 남길 때까지도 내내 재정의되고 새로이 기억될 테니 좋고 나쁨 자체가 관건은 아니겠다. 다만 그것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와 그로부터 떠나가고 다가오는 것들이 겹겹이 교차하는 그 다음이 더 중요해지는 것이겠지.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더보기
김시선, '오늘의 시선' - 하드보일드 무비랜드 ​ "(...) 그러니 '언제부터 영화를 좋아했냐?'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다. '언제부터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언제든 지금 좋아하는 게 있다면, 자신을 믿고 사랑하라'고. 다른 이에게 물어볼 필요는 없다. 그 우연의 과정이 당신을 또 다른 우연으로 이끌 것이다. 그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든 의미는 붙이기 나름이다." (프롤로그, 13쪽) 김시선, 『오늘의 시선』 (자음과모음, 2020) ⠀ 김시선은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영화를 깊게 보고 그것을 즐겁게 생각하며 그것에 관해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유튜버'가 지금처럼 대세가 아니었을 때 1세대로 크리에이터 활동을 시작한 사람이기도 하다. 영화에 관해서라면 그의 많은 이야기를 내 이야기처럼 신뢰하고 그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신이 나.. 더보기
[1인분 영화] ‘천공의 성 라퓨타’ – 본 적 없는 세계를 그리워하기(상) (2020.12.16.) (...) 한 번도 마주하지 못한 어떤 세계를 그리워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있습니까, 가 아니라 있을 것입니다, 라고 적은 건 그 세계의 모양과 세부, 크기 등은 다르겠지만 저마다에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존재했을 것이라고 저는 믿기 때문인데요. 예컨대 사소하게는 밤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는 일도 달이라든가 태양계의 어딘가에 대해 여러 자료나 매체 등을 통해 접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곳에 가본 적이 없으니까요. 결국 눈으로 직접 보지도 않았고 그곳의 공기와 냄새는 어떠한지 알지 못하는 곳을 사람은 그리워할 수 있다고 표현 가능합니다. (...) (2020.12.16.) ⠀ [1인분 영화] 12월 일곱 번째 글은 '본 적 없는 세계를 그리워하기'(상)라는 제목으로 영화 (1986)에 관해 썼.. 더보기
워너와 HBO Max에 입을 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 'The Hollywood Reporter'에 따르면 놀란 감독은 HBO Max를 '최악의 스트리밍 서비스'라 언급하며 위와 같은 워너의 결정이 영화 제작자들과 관계자들을 존중하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들은 (이 결정으로) 무엇을 잃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곧 분화가 아니라 역기능이다(영화 산업을 해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뜻)." 다시 말해서 현재 극장 상황을 코로나 19 이전의 극장 상황과 그로부터의 흥행을 평가하는 기준과 동일하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놀란 감독의 최근작 은 국내에서 199만 관객을 동원한 것을 포함해 전 세계 극장 수익 3억 6,130만 달러를 기록했다. 제작비 등을 감안하면 극장 상영으로는 손해를 봤지만, 사실상 여름 시즌을 .. 더보기
[1인분 영화] ‘환상의 마로나’ – 행복했던 것처럼 회고하기(하) (2020.12.14.) (...) 위와 그 결은 서로 다르지만, 역시 인간 기준에서의 물리 법칙들을 대부분 다 거스름으로써 ‘마로나’의 시점에 한층 가까워집니다. 가령 ‘마로나’의 두 번째 주인인 ‘마놀’은 곡예사입니다. 거리에서 각종 재주를 뽐내며 사람들에게 팁을 받는 그는 처음 ‘마로나’의 주인이 되었을 때 ‘마로나’가 보기에 아주 신기하고 낯설어 보였을 거예요. 그래서 ‘마놀’을 는 키가 몇 미터도 되었다가 팔이 여러 개였다가 연체 동물이라도 되는 양 신체 이곳저곳이 자유롭게 접히고 굽어지는 등 애니메이션을 통한 곡예 자체로서 묘사합니다. ‘마로나’가 첫 주인으로부터 팔린 뒤 도시의 낯선 사람들과 시가지의 위협적인 풍경들을 마주할 때 역시 사람들의 눈은 주로 빨갛거나 초록색으로 표현되어 있고 몸과 몸 바깥의 구분이 명확하.. 더보기
'1917'부터 '테넷' 그리고 '내언니전지현과 나'까지: 2020년을 기억할 다섯 편의 영화 기록들 (...) 2. 최근 디즈니 인베스터 데이에서 마블은 스트리밍 서비스에 주력한 2022년까지의 라인업을 대거 발표했고, (디즈니 플러스는 2021년 국내 론칭 예정) 워너브러더스는 아예 2021년 자사 라인업 전체를 극장과 HBO Max에 동시 공개하겠다고 했다. 미국에서 제일 큰 극장 체인인 AMC는 아예 2021년에 자사의 유동성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 투자자들에게 고지했다. CGV도 대학로,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등 7개 지점을 지난 10월 말부터 영업 중단했다. 7개 지점 모두 폐점은 하지 않았지만, 3년 내 30% 지점을 줄인다고 했으니 상황이 호전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국내의 작년 극장 관객 수는 2억 2,667만 명, 올해는 작성 시점 기준 5,860만 명. 오후 9시 이.. 더보기
[1인분 영화] ‘환상의 마로나’ – 행복했던 것처럼 회고하기(중) (2020.12.11.) (...) “여기는… 영점의 영점이다. 무가 되는 순간. 아스팔트 위의 얼룩. 이름도 없고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는.” -영화의 첫 내레이션 ‘사람들이 죽을 때는 그런다고 들었다’라며 ‘마로나’는 인생이 영화처럼 스쳐가듯 자기의 생이 지금 스쳐간다고 말합니다. ‘마로나’는 시작부터 인간에게 개가 표현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려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에는 자신의 출생 이전 즉 부모가 서로 만나기 전의 이야기까지 시각적 이미지로 담겨 있기 때문에 ‘마로나’ 스스로는 다 알 수 없는, 일종의 전지적이고 초월적인 시선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Fantastic Tale’이기도 한 것이겠지요.) (...) (2020.12.11.) [1인분 영화] 12월 다섯 번째 글은 '행복했던 것처럼.. 더보기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