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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패터슨'(2016) 내일이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떨치지 못하면서도, 그 하루가 오늘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남은 힘을 걸어보면서도, 살아있다는 그 아무렇지 않은 놀라움에 관하여. 좋은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란, 이 세상에서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깨닫기 위해서일 것이며, 남들 하는 대로 살라는 말을 거부하기 위해서일 것이며, 또한 하나의 세계란 결론이 아니라 곧 과정이어야 함을 알기 위해서이기도 하겠다. '내일의 불확실한 그것보다는 오늘의 확실한 절망을 믿는 것 / 이 말들은 던져진 운명처럼 존재하는 것이다 (...) 빠름보다는 느림을 준비하네 그러므로 시는 / 아무도 돌보지 않는 깊은 고독에 바치는 것이네 / 그게 좋은 시를 읽어야 할 이유'(천양희, 「詩作法」 부분, 『새벽에 생각하다』) 시.. 더보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 6 시즌 4에서 프랜시스에 이어 클레어 역시 시청자를 향해 처음 방백("We make the terror.")을 했을 때의 놀라움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만큼 여러 시즌을 거듭해도 드라마가 힘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이보다 잘 보여주는 시리즈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넷플릭스를 이야기 하는 데 있어 [하우스 오브 카드]를 빼놓는 건 불가능한데, 첫 시즌 때의 강렬함은 아닐지라도 왜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강력한지를 증명하기에 시즌 6는 부족하지 않다. 촘촘한 이야기보다 강력한 캐릭터와 배우 하나로도 드라마가 이끌어질 수 있다는 것. (로빈 라이트는 이전 시즌에서도 일부 에피소드의 연출을 직접 맡기도 했고, 이번 시즌 역시 Executive Producer로 참여했다) 결과적인 이야기이나 8부작이 아니라 이전.. 더보기
어떤 편지 편지를 주기로 한 날에는, 봉투에 담아 마스킹 테이프를 붙인 후 그걸 재킷의 안주머니에 고이 넣은 채 그날 온종일 몸 가장 가까운 곳에 지니고 다녔다. 봉투가 어디 가지 않고 잘 들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무심코 안주머니가 있는 쪽 가슴에 손을 대어보기도 했다. 습관처럼 주머니를 손으로 더듬을 땐 전화기보다도 편지의 안부를 먼저 확인했다. 미약한 문장으로 쓰인 글로는 다 담아내기 힘든, 조금의 온기가 더 잘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어떤 편지는 끝내 전하지 못하게 되기도 했다. 더보기
영화 '청설'(2009) (2009)은 모처럼 맑고 청량한 데다 순수하기까지 한 영화였다. 좋아하는 이들이 많을 작품이고 또 대만 영화를 이야기할 때 몇 손가락 안에 빠지지 않곤 하지만 그러나 이 아주 잘 만든 영화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양양'과 언니 '샤오펑'의 이야기, 그리고 '티엔커'와 '양양'의 이야기가, 한 영화 안에서 서로 썩 잘 스며들고 녹아드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돌이킬 때 결국 두 이야기가 하나로 만나게 될 수밖에 없었음을 알지만, 관람 도중에는 각자의 리듬감이나 비중이 이질적이었다. 두 개의 작품을 동시에 본 것처럼. 그러나 을 그럼에도 지지할 수 있는 건, 사랑과 꿈의 이야기를 다루는 데 있어 어느 한 사람의 청각과 같은, 감각이 제한된 조건 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에 .. 더보기
영화 두 편, '보헤미안 랩소디'(2018) & '퍼스트맨'(2018) _어떤 음악이나 아티스트가 영원한 생명력을 얻는 건, 즉 시간으로부터 살아남는 건, 모두에게만 허락되는 게 아니라 비교적 소수의 것이다. 영화가 있어 오늘도 하염없이 들었다. 이것이 찰나가 아닐 거라 믿고서, 이 노래가 멈추지 않길 바라면서. "노래하듯 말하면 더듬지 않을 수 있다"(안미옥, '아이에게'). 'As if nothing really matters'(Queen, 'Bohemian Rhapsody'). 노래는 단지 음성이 아니라, 온 몸과 마음으로 하고 또 된다. 정말 그런 마음으로. _하나의 세계가 끝나는 경계에 이르면 누군가의 뒷모습을 느끼곤 한다. 이 삶에서 내가 떠나온 것들에 대하여, 혹은 나를 떠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들에 대하여 돌아보는 순간이 바로 그 경계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 더보기
이 끝은 얼마만큼의 과정입니까 돌아보면, 무르익은 계절보다는 계절과 계절이 바뀌는 무렵 그 사이와, 실내외의 온도차가 클 무렵이 나는 언제나 편치 않았다. 그러나 괜한 의미를 이곳저곳에 부여하지 않기로 하고, 나만 대단한 시련을 겪는 사람인 척도 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힘들 때 찾아 들었던 노래들과, 숨어 들었던 시들을 다시 꺼내는 것 정도. -내가 당신을 귀하게 여겼던 것만큼 누구에게든 귀한 사람으로 대접받길 바랍니다 내가 당신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여겼던 것만큼 누구에게든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아지길 바랍니다 내 가장 아픈 곳을 밝혀 사랑한 것만큼 누구에게든 가장 깊은 사랑의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지나간 날들이 당신에게 슬픔의 기록으로 남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고통과 자기 연민의 도구로 쓰이지 않게 되길 바랍.. 더보기
벌써 11월 가을은 이렇게 짧구나. 어느덧 11월이 되었다. 혹은, 지나고 보니 11월이 되어버린 걸 발견했다. 계절은 모두에게 공평할 것이다. 날씨도 마찬가지겠다. 좋은 날씨, 나쁜 날씨가 나뉘는 게 아니라 저마다 서로 다른 종류의 좋을 날씨들이겠다. 며칠 내내 심규선(Lucia)의 노래만 듣고 있다. 전부터 폰 재생목록에 몇 곡이 있었고 아주 새롭게 접한 아티스트는 아니지만 특히 지난 얼마의 시간은 오로지 이 사람 노래만 들었다, 고 해야겠다. '부디', '이제 슬픔은 우리를 어쩌지 못하리', '소년에게', '외로워 본' 등 유난히 맴돌았던 몇 곡이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나는 다가오는 것들에 여전히 의연하지 못한 무딘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지난주에는 듣고 싶었던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강연 행사에 다.. 더보기
영화 '다가오는 것들'(2016) 내내 '나탈리'가 부러웠다.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부정 당하는 듯한 그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도, 그는 흔들리는 듯 보이다가도 이내 평정을 유지한다. 무엇보다 그가 평생 일궈온, 철학 교육자로서의 기품이, 읽고 쓰고 연구하는 사람이라는 그 정체성 자체가, '나탈리'의 지금을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부러웠던 건, 아직 그런 상황에서 나를 지켜내기엔 한참 미숙하고 먼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화 내내 '나탈리'는 어딜 가나 책을 끼고 살며,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일에 의연할 줄 안다. 감정을 섣불리 앞세우지도, 그렇다고 그 감정을 회피하거나 외면하지도 않는다. 그는 영화 내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그에게도 내게도 앞으로도 희망적인 삶만 있지는 않.. 더보기
JTBC 드라마 '뷰티 인사이드'(2018) 드라마를 영화만큼 많이 봤다고 하긴 어렵지만 그럼에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좋은 드라마는 첫 회부터 자신의 장점들을 여지없이 드러낸다는 점이다. 연예인을 가볍게 생각하고 함부로 대하며 폄하하기 바쁜 대중들과 매체의 행동을 정확하게 짚고 있으며, 작품이 정해놓은 설정이 단지 소재에 그치지 않고 이야기의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 역시 알 수 있다. 그 바탕이 있고서야, 캐릭터를 소화하는 배우의 얼굴이 돋보이기 시작한다. 여러모로 이후 전개가 기대되는 작품이다. '-다움', '-스러움' 같은 말들로 아무렇지 않게 개인의 고유성을 훼손시키거나 무시하는 사회에서, 누군가는 늘 '나다움'을 고민한다. 공동체로 포장된 사회에서 '나'로 살아남기 위해 애쓴다. 그렇게 애쓰는 사람들은, 비슷한 일을 겪어본 이.. 더보기
영화 '펭귄 하이웨이'(2018) "판타지가 우리에게 하는 일이란, "어릴 때 꿈꾸고 상상하는 것들은 다 지나가고 사라지는 것들이야"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시절에만 가능한 (때로는 철없는) 것들이, 지금의 당신을 만들어왔고 네가 기억하는 한 마음속에서 그 세계는 언제나 살아 있을 거야"라고 가르쳐주는 일이다. 그것이 덧없는 환상이 아니라고, 잊히더라도 당신의 세계는 하나가 아니었다고. 그러니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를 그저 거대한 물음표로 보면 돼요."(장 자크 상뻬) (...) 다시, 판타지로 돌아와서. '치과 누나'는 대략 이런 말을 한다. 잊지 않는다면, 우린 언젠가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에서 저 펭귄으로 인한 모든 소동이 지나고 난 뒤, 마을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것처럼 보인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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