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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유월 마지막 날 글이나 영화 등 누군가의 세계관이 투영된 대상을 통해 그 사람의 세계를 좋아하게 되는 일이 가능할까. 가능하지 않을 이유란 어디에도 없다고 믿는다.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이의 글을 읽으며 그 사람을 선생님이라 여기고, 마음의 선배라고 여기게 되는 일을 나는 많이 겪어왔고 또 겪고 있다. 이준익 감독님의 영화들도 내게는 그런 의미가 되었는데, 와 에 이어 마침내 을 통해서는 그것에 거의 확신과 같은 것을 품게 되었다. 다시 본 영화는 처음 이상 좋았고, 이 영화가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에는 변함없으리라 믿을 만한 신뢰가 생겼다. 오늘의 메가토크는 그동안 다녀본 것과는 확연히 다른, 참가자들의 서로에 대한 우정과 신뢰가 듬뿍 느껴졌는데 그것은 존재만으로 현장을 빛나게 해주는 것이었다. 폰으로 제대로.. 더보기
영화 '변산'(2018) 삶을 고쳐 쓴다는 것의 의미는 바탕을 완전히 지우고 처음부터 새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내 삶은 이렇게 평생 '남들처럼'도 못 되고 하고 싶은 것도 이루지 못하고 그저 불행하기만 할 거라고 주저앉는 대신, 내가 앉은 자리가 과연 어디인가를 치열하게 둘러보고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없던 것을 고쳐 쓰는 게 아니라 있는 것에서 조금 다른 방향을 찾아내는 것이다. '학수'와 '선미'가 영화 에서 보여주는 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포장이 아니라 날것의 존재다. '넌 있는 그대로 무조건 괜찮아'가 아니라, '넌 여기까지가 아니라 조금 더 멀리 걸을 수 있어'인 것이다. 영화 중반 '학수'와 '선미'가 길을 걷다 만나는 어느 버스킹 뮤지션의 노래.. 더보기
그런 일들 집을 나서기 전 우산을 뒤집을 듯 비가 쏟아지더니 지하철역에 다다르니 비를 맞고 걸어도 될 만큼 잦아드는 일길을 가다 눈이 따끔한 느낌이 들어 닦아내고 보니 검은 눈물이 흐른 것처럼 날파리 하나가 부딪혀 죽어 있는 일길게 줄을 서서 받는 어떤 경품이 딱 내 앞에서 소진되는 일새로 꺼낸 신발이 맞지 않아 뒤꿈치가 벌게져서는 밴드를 붙였는데 붙인 자리 바로 위가 까지는 일종이책을 샀다는 걸 잊어버리고 같은 책의 전자책을 또 구입하고는 그걸 다 읽고서야 종이책의 존재를 깨닫는 일그런 일들은 예고가 없으므로 그런 일일 수 있다그런 일이 일어나는 날은 단지 어느 날이다어떤 일을 그저 어느 일로 생각할 수 있으려면 그것들에 마음의 기척을 두지 말아야 하겠다집 앞에 누가 버린 곰인형에 처음에는 무슨 사연일까 마음이 .. 더보기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 어느 대화에서 아녜스 바르다는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그게 늘 마지막인 것 같아"라고 말한다. 그녀는 이런 말도 했다. "'오래된'이란 말보단 길게 만난'이 더 좋아." 삶의 태도란 그런 사소한 언어에서 알 수 있는 게 아닐까.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메모하는 습관을 오래전에 버렸던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도중 노트와 펜을 다시 꺼낼 수밖에 없었다. 적으면서 느꼈다. 삶을 살아가듯 삶을 사랑하듯 영화가 삶과 세상을 다루는 방식을 더 사랑해야지. 장 뤽 고다르의 집에 찾아갔지만 그를 만나지 못해 상심한 아녜스에게, JR이 말한다. "우리 호수 볼까요?" 영화가 끝나자, 정말로 호수가 펼쳐졌다. 한 가지 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이란 국내 개봉용 제목. 작품의 의미를 조금도 놓치지 않고 살리면서도 원제.. 더보기
'조제'와 '츠네오'를 보면서, '좋은 이별'에 대해서 생각하다 얼마 전 '좋은 이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지난 날의 일들을 안주 삼아 거닐었던, 그 대화의 답은 '과연 그런 게 어디 있겠냐'는 것이었고 대화의 주된 화제는 그것 자체가 아니라 거기까지의 과정에 관한 것이었지만, 며칠 동안 나는 그 단어에 대해 더 생각했다. 좋은 이별. 이별은 좋은 것일 수 있는가. 평생에 사랑은 단 한 번이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아니어도, 헤어짐은 겪기 힘든 것이며 가능한 겪고 싶지 않은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기도 전에 '헤어지면 어떡하지' 싶어지는 그 불안을 나 역시 헤아릴 수 있다. 그러니 질문을 조금 고쳐 적어야 하겠다. 이별에 대하여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태도, 혹은 가장 좋을 것이라고 믿을 만한 태도는 과연 무엇일까. (...) (중략) (...) 지나간.. 더보기
'오션스 8'(2018) (2018)이라는 제목을 통해 이 스핀오프가 또 하나의 시리즈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작품 자체는 무던하고 소박한 편이었다. 시리즈를 만든 스티븐 소더버그의 근작인 (2017)가 될 수 있었던, 작은 일이 만든 큰일들(기획력, 실행력, 무난함, 간편함, 안이함)에 대한 영화가 아니었나. 두드러지는 단점은 없는 대신 특기할 만한 장점도 없다. 스핀오프의 본분에 충실할 뿐이지만, [보그]의 편집장 안나 윈투어를 비롯한 다양한 카메오들의 활약, 감각적인 의상과 일부 컷 편집이 다행히 이 기획을 성공적인 기획으로 볼 수 있게 만든다. (북미에서는 역대 시리즈 중 최고 오프닝 기록을 세웠다.) 작위적 우연에 기댄 각본인 데다 크게 돋보이는 캐릭터가 없고, 장르적 쾌감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전반에 비해 후.. 더보기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 모임에서 다룰 영화는 보통 이미 블루레이를 소장하고 있거나 아니면 정말 아끼고 좋아하는 영화를 고른다. 은 그런 선정 규칙을 벗어나 '보고 싶어서' 고른 영화였다. 평소대로라면 이미 몇 번은 본 영화를 모임 준비를 위해 몇 번을 더 보고 국내외 리뷰와 비평을 찾아 읽고 원작이 있는 경우 그 원작을 찾아서 읽으며 준비를 했어야 하지만, 내가 와 함께한 3주는 그에 비하면 한없이 짧은 시간인 것이다. 어떻게 감상을 정리해야 할지 아득해져 류근과 나희덕, 박소란의 시를 읽고 아델과 에이미 와인하우스, 우효, 나비, ... 여러 노래들을 섞어 들었으며 영화 대신 다나베 세이코의 원작 단편집을 꺼냈다. 그러고는 영화는 오늘에서야 겨우 두 번째로 봤다. 2003년 작이라는 걸 상기하지 않아도 될 만큼 투박하고 담백.. 더보기
이제서야 엮어본 영화책, [그 영화에 이 세상은 없겠지만] [그 영화에 이 세상은 없겠지만] "(...) 냉정하게 보자면 어차피 그것들은 다 영화입니다. 장르가 무엇이든, 어느 나라의 영화이든, 누가 어떤 이야기를 연기하고 다루어 보여주든, 스크린 너머로 바라보는 그 세상은 저와 당신이 숨 쉬며 살고 있는 여기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타인의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우리’의 이야기라고 느낄 수 있는 건,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서도 삶을 발견하기 때문이며 어떤 순간에는 그게 마치 자신이 직접 겪은 이야기처럼 깊이 닿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간접 체험’의 서사라고 여기는 까닭입니다. 간접 체험이라고 적은 건 ‘그 영화’는 결국 ‘그 세상’의 이야기라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 영화에 이 세상은 없겠지만, 그래도 당신과 함께 그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건 정말로 .. 더보기
[류이치 사카모토: 라이프, 라이프] 전시를 관람하다. (@피크닉) **평일 오픈 시간(11:00) 딱 맞춰 왔는데도 사람이 많았다. 그래도 오전 일찍 오는 게 최선일 것 같다.**류이치 사카모토에 대해 정말 궁금해서 온 건지 그냥 핫한 전시라고 해서 와본 건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셔터 소리가 나는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고 명확히 안내되어 있는데도, 여기저기서 찍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제발. 1) 여긴 대림미술관이 아닙니다. 2) 음악과 소리를 들으러 온 거지 사진 찍으러 온 게 아닐 텐데요... 3) 순간을 좀 더 마음으로 담고 느낄 줄 알았으면.**공간의 크기에 비해 다소 회전율이 떨어질 수 있는 구성이지만, 작가와 긴밀히 협업하여 만들었음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하고 탄탄한 기획이었다.**류이치 사카모토의 유명한 곡들 위주의 구성보다는, 그가 .. 더보기
드라마 [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보면서 원작 소설을 펼치다. "안녕, 여러분. 난 해나 베이커야. 카세트테이프 안에서 난 아직 살아 있어." 넷플릭스 드라마로 먼저 시작했는데, 아직 겨우 첫 시즌 초반부를 보는 중이었지만 매 회차 거듭 충격적이어서 주저 없이 원작을 구입했다. (이 드라마의 원제는 '13 Reasons Why'이지만, [루머의 루머의 루머]라는 제목은 원작 소설의 국내 출간 제목을 따른 것이다.) 사진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테이프 속 해나의 음성은 작품의 화자인 클레이의 서술과 그 텍스트가 다른 색상으로 구분돼 있다. 내게는 "사람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는 추천해준 이의 코멘트가 꽤 오래 기억에 남아 있고 드라마를 보면서 점점 그 말을 생각하고 있는데, 비록 모든 문학과 영화, 드라마에 적용될 법한 말임에도 이 말은 이 드라마에 특히 더 밀접..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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