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썸네일형 리스트형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2004)를 다시 보았다 배우 다케우치 유코의 비보를 듣고 영화 (2004)를 오랜만에 넷플릭스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후 영화들, 특히 나 과 같은 2010년대 다케우치 유코의 출연작들은 거의 보지 못했으므로, 내게는 가 강하고도 특별하게 기억에 있었다. 그 기억처럼 여전히 거기 있었고 흘러간 시간들처럼 새로운 모습으로도 또 거기 있었다. 좋아하는 루이스의 이 말도 괜히 한 번 떠올려보는 것이고. "모든 여정을 알면서, 그 끝을 알면서도, 난 모든 걸 받아들여. 그 모든 순간을 기쁘게 맞이하지."(영화 (2016)에서) 배우가 세상을 떠나도, 영화는 이렇게 남는다. www.netflix.com/title/80061840 지금, 만나러 갑니다 | Netflix 비의 계절에 돌아온다는 약속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그녀, 비와 함께.. 더보기 [1인분 영화] ‘어드리프트: 우리가 함께한 바다’ – 보이지 않지만 거기 있는 것(상) (2020.09.23.) (...) 요트를 타고 수천 킬로미터를 항해하는 이 이야기의 큰 줄기를 관객은 처음부터 이미 아는 채로 영화를 함께하게 됩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아무런 생명의 흔적이나 붙잡을 무언가도 보이지 않고 저 수평선 너머엔 오직 구름 낀 하늘 밖에 존재하지 않을 때, 그 사람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는 영화의 실제 주인공 태미가 직접 쓴 회고록을 기반으로 하여 5년여의 시나리오 작업을 거쳐 탄생한 작품입니다. (...) 이메일 영화리뷰&에세이 연재 [1인분 영화] 9월호 열 번째 글은 '보이지 않지만 거기 있는 것'(상)이라는 제목으로 영화 (2018)에 관해 썼다. 전문은 구독자 이메일에서. 10월호 구독자 모집은 9월 30일까지 열려 있다. (링크) 더보기 [1인분 영화] ‘그래비티’ – 살아있음의 아이러니(하) (2020.09.21.) (...) ‘라이언’은 소유즈의 연료가 이미 다 되었지만 다시 발진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을 떠올립니다. 물론 이것으로 곧장 지구에 돌아가는 건 아니고, ‘텐궁’이라는 중국 정거장의 소형 우주선을 찾아 그것을 움직여야 하니 거기서는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라이언’은 다시 한번 의욕을 갖습니다. 이제 이 고난의 여정이 어떻게 될지는 ‘맷’의 말처럼 ‘라이언’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선내의 여러 버튼들을 차근차근 다시 조작해보면서, ‘라이언’은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이제 운전은 그만 할래, 집에 가는 거야. 멋진 모험담을 들려주든지 10분 안에 불타 죽든지 밑져야 본전이겠지만 어느 쪽이든 아주 엄청난 여행이 될 거야.” (...) 이메일 영화리뷰&에세이 연재 [1인분 영화] 9월호 아홉 .. 더보기 [1인분 영화] ‘그래비티’ – 살아있음의 아이러니(중) (2020.09.18.) (...) 아무 의미도 효과도 없어보이지만 그 ‘아무런 말’이 이상하게 힘이 되는 순간을 혹시 경험해보셨는지요. 당장 힘이 되지는 않더라도 마음을 고쳐먹고 무슨 행동에 나서게 하거나 적어도 그럴 의지가 되살아나게 하는 말. “힘내”라거나 “할 수 있어”라거나. 이런 말은 스스로 중얼거리는 것보다 누군가 자신에게 해줄 때 더 영향력을 갖습니다. 적어도 영화 는 그렇게 말해주고 있어요. 이 세상에서 나를 살아있게 해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꼈을 때, 정말로 죽기 직전이어서 마지막을 예감하는 어떤 상황에서 자신과 누군가 여전히 ‘연결’ 되어있다는 그 관계의 실감은 사람을 살게 해줄 수도 있다는 것을요. (...) 이메일 영화리뷰&에세이 연재 [1인분 영화] 9월호 여덟 번째 글은 '살아있음의 아이러니'.. 더보기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Notorious RBG 겨우 영화로나마 펠리시티 존스가 주연한 (2018)과 다큐멘터리 (2018)를 봤을 뿐이니 (마음산책에서 나온 『긴즈버그의 말』(2020)을 구입하기는 했지만) 그의 삶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수는 없다. 거의 모른다고 해야만 한다. 성별에 근거한 차별이 위헌임을 미국 연방대법원이 처음으로 인정하게 만든 사람. 남성의 입학만 허용한 군사학교에 대해 양성 평등권 침해라고 판결한 사람. 연방대법관 인준 청문회(1993년)에서 "정부가 여성의 선택을 대신하는 건 여성을 자신의 선택을 책임질 완전한 성인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라고 말한 사람. 누군가 자신의 뜻을 지지 않게 만들고 다른 사람의 뜻을 존중받도록 만들 때, 세상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난다. 사놓고 제대로 시작도 하지 못한 몇 권의 책들을 올려다.. 더보기 소셜 미디어의 명과 암 분명히 이해하기: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2020) "충분히 발달한 과학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 (아서 C. 클라크) (Any sufficiently advanced technology is indistinguishable from magic.) 경영학부 수업을 들을 때 종종 흘려들었던 사례 중 하나로, 대략 '네이버는 사용자를 자신의 웹사이트 내에 오래 머무르게 하는 반면 구글은 그것으로부터 떠나 다른 페이지로 가도록 짜여 있다'라는 식의 이야기가 있다. 주로 전자보다 후자를 포털의 좋은 예시로 언급할 때 위와 같은 비교가 쓰인다. 그러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2020)가 말하는 것처럼, 21세기의 IT 회사들이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에 관한 많은 정보를 그 사람 본인도 모르는 채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겠다. 오히.. 더보기 [1인분 영화] ‘그래비티’ – 살아있음의 아이러니(상) (2020.09.16.) (...) 왜 우주에 왔냐는 ‘맷’의 물음에 ‘라이언은 “소음이 없어서”라고 답합니다. 아무런 소리가 없는 공간이라는 게 좋아서 왔다고. 불의의 사고로 어린 딸이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 뒤, ‘라이언’은 삶의 의지를 잃은 채였습니다. 일을 마치고 나면 아무 멘트가 없는 아무 라디오 채널이나 튼 채 목적지 없이 드라이브를 했고 특별히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를 맺지도 않은 채 공허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라이언’이, 초유의 재난을 만나자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지 당장 생존의 가능성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태에 놓입니다. 소음이 없어서 우주에 오길 택했지만 그 소음 없는 공간이 주는 무력감과 막막함은 오히려 주인공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가 됩니다. 이 아이러니에 관해 더 생각해보기로 합니다. (...) 이메일 영화.. 더보기 다시 만나는 영화 '그래비티' 극장에서 2D로도 3D로도 4D로도 IMAX로도 보았으며 집에서도 두 번은 더 감상했지만 알폰소 쿠아론의 (2013)는 몇 번이나 호흡을 참게 되고 또 몇 번이나 가쁜 숨을 내쉬게 만든다. 지난밤에도 90분 내내 라이언을 따라 호흡했다. [1인분 영화] 9월 일곱 번째 글을 쓰면서, 오스카 음악상을 수상한 스티븐 프라이스의 음악을 다시 듣고 있다. 소리가 없는 곳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은 영화인 탓에 스코어의 역할이 그 어떤 영화보다도 중요하게 느껴지는데, 알면서도 영화 중반에는 우주에 그 누구도 곁에 없이 홀로 남겨진 기분이 되었다가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무렵에는 살아갈 의지를 다짐하게 되는 마법 같은 체험이 일어난다. 이런 건, 마법이 아니라 무엇이라 부를 수 있겠어. 이미 살고 있는 삶을 다시 살게.. 더보기 알지 못하는 사이 내게도 이런 여름이 있었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2019) 리뷰 (...) 영화 (2019)을 보고 난 후의 감상을 어떻게 정리할지 궁리해보는 중이다. 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영화를 보는 동안 박준의 위 시를 떠올렸던 계기부터 써볼까. 여느 시들의 인용이 대체로 그러하겠지만 이 '처서'라는 시도 그 내용 자체보다는 담겨 있는 분위기에 착안했다. 마루에 앉아 저기 널려 있는 옷들을 바라보며 '아 여름이구나' 하고 중얼거려보는 일. 아니면 그 여름에 불던 바람이 따뜻한 바람이었는지 찬 바람이었는지, 습도는 어땠는지 같은 기억들. 여름이라는 계절을 기억하게 하는 요소에는 이런 것들이 있겠다. 내 경우로 한정하자면 그 계절의 한가운데보다는 다음 계절로 넘어갈 무렵, 그러니까 절기로 따지자면 입추보다는 처서가 더 알맞을 것이다. 은 내게 백로의 무렵에 만난.. 더보기 어떤 영화를 좋아하냐는 물음 어제 [써서 보는 영화] 온라인 수업 중 내 영화 취향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영화 한 편만 고르는 것을 제일 못 하는 사람답게 과 와 같은 영화를 좋아한다고 넓은 범주의 답을 대충 했었다. 이건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한데, 상업 영화와 다양성 영화를 굳이 다른 범주로 두고 싶어하지 않고 자의적인 판단에서 '좋은 이야기'로 생각되는 작품이라면 그건 좋아하는 영화의 범주에 어김없이 넣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게 '좋은 영화란 이런 것이다'라고 기준을 설정하는 건 마치 세상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것들을 단 하나의 명제로 설명하려는 것과 같아서, 대전제처럼 좋은 영화의 기준을 정의하는 건 언제나 불충분하고 부정확하다. 그러니 내 이야기는 언제나 특수하고 국소적인 방식으로 시작한다. (2018)은 대중문화를 향한 .. 더보기 이전 1 ··· 34 35 36 37 38 39 40 ··· 7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