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28x90
반응형

분류 전체보기

나는 지금 이 순간의 한복판에 서서 - 장류진, 달까지 가자 문이 닫히고, 회계팀장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끝내 들리지 않게 되자 우리는 또다시 몰아뒀던 웃음을 와르르 터뜨렸다. 밭은기침을 하던 지송이가 목이 메었는지 빨대로 사과주스의 색을 닮은 맥주를 급하게 들이켰고 은상 언니는 의자를 45도쯤 뒤로 기울이고 천장을 바라보면서 새끼손가락으로 눈물까지 찍어내고 있었다. 그 모습들이 하찮고 우스워서 나는 내가 보고 있는 이 장면을 사진 찍듯 꼭 붙잡아 어딘가에 담아두고 싶다고 생각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 그렇게 해두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조금 이상했다. 벌써 다 알고 있다는 느낌, 미래에서 나를 과거처럼 내려다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묘한 감각이 일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더는 이 회사에 다니지 않는 때가 온다면, 그리고 그때 이곳을 그리워할 .. 더보기
장류진 작가의 새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창비, 2021) "나는 겁이 많고, 걱정이 많고, 좀처럼 스스로를 믿지 못하지만 내가 만든 이야기들은 나보다 씩씩하고 나보다 멀리 간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제 더는 나 자신을 의심하지 말자고 다짐할 수 있었다." (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 작가의 말에서, 창비, 2019)“장편소설을 쓴 건 처음이라 많이 두근거린다. 어릴 적 과자를 먹을 때면 다분히 의도적으로 닦지 않고 남겨둔 손가락 끝의 양념 가루들을 마지막 순간에 쪽쪽 빨면서 ‘음, 괜찮은 한봉지였어’ 생각하곤 했다. 이 책의 마지막을 읽고 있는 당신도 최후의 맛을 음미하듯 ‘음, 괜찮은 한권이었어’라고 느껴주시면 좋겠다고 감히 소망해본다. 이 장을 덮고 나서 앞의 것들을 모두 잊어버리더라도 그 느낌 하나만 남는다면 더는 바랄것이 없겠다고.” (장류.. 더보기
클로이 자오 <노매드랜드>(2020) - CGV 아카데미 기획전 벽과 기둥으로 된 전통적 의미의 집(House)을 포기한 채 계절성 노동으로 캠핑카의 연료를 채우며 석양을 바라보는 사람들. 중산층이라는 아메리칸 드림이 어려운 꿈에서 불가능한 꿈으로 바뀌어가는 시대에 노매드가 되기를 택한 사람들에게서 (2020)는 애써 낙관을 발견하려 하는 대신 그들의 삶 자체를 곁에서 지켜보고 한걸음 물러나 관조한다. '남들처럼'에 자기 삶의 양태를 맞춰야 할까? 그렇지 않은 삶도 있다. ⠀ 내 꿈이 보잘것없고 가능하지도 않다고 여겨질 때, 질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잠자리에 드는 것이 문득 막막하고 두려울 때. 를 떠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 영화를 만나고 난 뒤 일렁이는 생각들이 그때 가서 어떤 식으로든 중요한 의미가 되어 있을 것 같아서. 이런 이야기를 쉽게 만나지 못하리라는.. 더보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억지로 말하지 않는 일: 영화 '비밀의 정원'(2019) 리뷰 (...) 에서 과거를 둘러싼 대화의 주체가 '정원'과 '상우'만은 아니다. 염혜란과 유재명이 연기한 이모와 이모부는 물론, '정원'의 동생인 '소희'(정다은), 엄마 '은숙'(오민애) 등에 이르기까지. 은 숲에 있는 나무 하나하나를 눈여겨보고 그것들 사이의 관계와 그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여러 인물들의 감정과 그들 사이의 시선, 침묵 등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 등에 초정되었던 영화 은 박선주 감독의 첫 번째 장편이다. 대단한 사건이나 복잡한 플롯이 아니어도 인물의 내면을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그 감정을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의 연출과 각본, 연기를 만나고 나면 끄덕이게 된다. 이미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서 좋은 역할을 맡.. 더보기
영화 '더 파더'(2020) 후기/리뷰 오프닝 크레디트를 보면서 '불과 전에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음악을 접했는데 이 영화 음악으로 또 만나다니!' 같은 감탄을 하며 지난 경험을 기억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지만 (2020)는 영화를 보는 내내 기억이 아닌 망각에 관해 상기하도록 이끈다. '안소니'(안소니 홉킨스)에게 어떤 이가 "화창할 때 많이 걸어 다녀야죠, 화창한 날씨는 오래가지 않으니까."라고 말한다. 붙잡으려 해도 손아귀를 빠져나가고 어느 순간 다 흘러가고 다 떠나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생의 망연한 순간이, 대단한 잘못을 한 것도 잘못 살아서도 아니고 단지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로 찾아온다. '안소니'는 영화 내내 몇 번이나 손목시계를 찾지만 그는 시간을 제 손안에 넣을 수 없다.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이며 어제 무엇을 했고 오늘 아침에 어.. 더보기
김동진의 말 02 - 네 삶 너머에도 너의 이야기는 존재하니까 _ "네 삶 너머에도 너의 이야기는 존재하니까." (There are days that define your story beyond your life.) [영화 (Arrival, 2016), 드니 빌뇌브] 에이미 아담스가 연기한 언어학자 '루이스'가 먼 곳을 응시하는 저 표정에는 지나온 수십 년의 시간과 아직 다가오지 않은 더 기나긴 수백 년의 세월이 응축돼 있다. 얕은 산 아래로 내려오는 구름들과 저마다 짐을 꾸리고 분주히 어디론가 떠나가는 사람들. 조약돌 같기도 바위 같기도 한데 또 거울 같기도 한 헵타포드 종족의 비행선들이 지나간 자리. '루이스'는 옆에 선 물리학자 '이안'에게 묻는다. "당신의 전 생애를 다 볼 수 있다면, 삶을 바꿀 건가요?" 바꾸지 못한 것과 바꿀 수 없었던 것들이 연속이 지.. 더보기
요즘 난리라는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 끼적 모든 작품을 한 가지 기준만으로 보는 일은 별로 쓸모와 의미가 없다는 쪽에 동의하는 편이라서. 가령 역사왜곡 이야기. 어떤 작품에서 어떤 특정한 장면이나 특정한 인물이 가지고 있는 행동이나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역사관이나 가치관이, 그 작품을 만든 감독이나 작가 등 제작진의 역사관이나 가치관을 대변하는가? 경우에 따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자체가 서로의 인과관계나 상관관계를 대변하지는 못한다.이렇게 말할 수 있다. 어떤 작품이 당대의 도덕적 가치에 반하는 어떤 것을 담고 있거나 폭력적인 무언가를 담고 있으면, 그 작품은 도덕적이지 못하고 폭력적인가? 아니. 작품에 대한 해석과 평가에 있어 더 중요한 건 부분이 아니라 전체이며, 부분은 전체의 흐름과 맥락을 통해서 진짜 의미를 갖는다. 가령 한 장면은 .. 더보기
영화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2021) 엔딩 크레딧곡 '할렐루야'(Hallelujah) 잭 스나이더는 이 곡을 이미 (2009)에서 쓴 적이 있고 이번 (2021)의 예고편에도 'Hallelujah'는 다른 편곡으로 등장했었다. 스나이더의 특기야 주로 고딕 호러스러운 영상 연출과 고속 촬영, 그리고 R등급일 때 특히 빛을 발하는 화려하고 스타일리시한 액션에 있지만 스나이더 영화에서는 선곡도 중요하다. 이번 영화의 엔딩곡을 부른 앨리스 크로우는 (2013)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엔딩 크레디트 서두에는 'For Autumn'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는데 이는 물론 자신의 딸 어텀 스나이더를 위한 말이다. 영화 중간에는 "You are not alone"이라 적힌 옥외광고가 지나가는데 그건 미국 자살 예방 재단(AFSP)의 표어다. (2017)에서 스나이더가 포스트 프로덕션 도중 하차했던 중.. 더보기
앞으로 올 사랑, 정혜윤 http://m.yes24.com/Goods/Detail/96095525앞으로 올 사랑2020년,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답해야 한다_코로나와 기후위기 이후 완전히 달라진 삶, 달라져야 할 삶 앞에서2020년은 인류사에 전례 없는 혼란으로 기억될 것이다. 2019년 1m.yes24.com 최근에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자신의 일상적인 식습관이나 소비습관 등을 바꾸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과거에 하던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 눈에 그들은 주의력과 절제야말로 우리 삶의 아름다움의 일부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앞으로 올 시대를 위해서라면 어떤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이 만든 삶의 원칙을 지키는 것에 해방의 가능성이 있고, 그것이 일상에 활기와 아름다움과 .. 더보기
레이디 가가의 그래미 수상, 그리고 리들리 스콧 감독 신작 '하우스 오브 구찌' 촬영 시작 외 사진 1. 'Rain On Me' 뮤직비디오에서의 레이디 가가와 아리아나 그란데 사진 2. 촬영 현장에서 아담 드라이버와 레이디 가가 오늘 열린 그래미 어워즈에서 레이디 가가와 아리아나 그란데의 곡 'Rain On Me'는 여성 듀오로는 처음으로 Best Pop Duo/Group Performance 부문을 수상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folklore' 역시 Album of the Year 부문에 수상했다.) 레이디 가가는 최근 리들리 스콧 감독의 신작 를 촬영 중이다. 북미 기준 11월 24일 개봉을 예정하고 있는 (2021)는 2001년 출간된 사라 게이 포든의 논픽션 를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이 책은 이번 주 국내 번역 출간을 앞두고 있다.) 구찌 가문에서 일어났던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한 .. 더보기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