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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코다'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지난 8월 개봉한 (2021)의 리뷰를 쓰면서, 제작 과정에서의 케네스 로너건 감독((2016))과의 인연에 대해 언급했었다. 때만 해도 (당연히 업무상) 아카데미 시상식을 실시간으로 챙겨봐야만 했었지만 오늘처럼 퇴근하고 집에 와서야 시상식 관련 뉴스들을 팔로우하는 날도 있다. ⠀ 단연 기억에 남는 뭉클한 대목은 전년도 여우조연상 수상자인 윤여정 배우가, (파란 리본을 맨 채) 남우조연상 수상자인 트로이 코처의 이름을 수어로 '호명'해주는 순간이었다. (는 남우조연상을 포함해 각색상, 작품상을 받았다) 노래가 끝난 뒤 마음에 울림으로 다가와 여운이 시작되는 것처럼, 좋은 이야기는 언어를 전달하는 매개체에 연연하지 않고 메시지 자체로 그 자신이 당대 관객들에게 필요한 이야기임을 증명한다. ⠀ 작년에 를 극.. 더보기
슬픔 뒤의 소실점을 끝까지 바라보게 만드는 풍경: 영화 '사랑 후의 두 여자' 리뷰 여객선을 타고 난간에 기댄 채 멀리 절벽의 한 겹이 무너져내리는 광경을 보는 여인이 있다. 그는 지금 막 상실을 겪어내는 중이었다. 사랑을 위해 종교를 바꿀 만큼이었던. 영국과 파키스탄의 시차를 넘어, 테이프에 목소리를 담아 녹음하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 사랑에 진심이었던. 그런 '메리'(조안나 스캔런)는 지금 도버 해협을 건너 프랑스 북부 던커크로,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중이다. 갑자기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 자신이 모르는 가족이 있었다고 한다. 영국 감독 알림 칸의 장편 데뷔작인 (2020)는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을 비롯한 유럽 여러 영화제에서 각광받은 뒤 국내에서는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었다. 올해에는 영국 아카데미(BAFTA)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조안나 스캔런) 수상, 작품상/감.. 더보기
룰루 밀러의 논픽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2021, 곰출판) “내가 물고기를 포기했을 때 나는, 마침내 내가 줄곧 찾고 있었던 것을 얻었다. 하나의 주문과 하나의 속임수, 바로 희망에 대한 처방이다. 나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약속을 얻었다. 내가 그 좋은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얻으려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다.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이면인 삶. 부패의 이면인 성장.”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지인 옮김, 곰출판, 2021, 263쪽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논픽션과 에세이, 전기, 혹은 서평 사이 어딘가에 자리한 책. 혼돈과 무질서함 속에서 확고한 신념에 따라 자연에서 질서를 발견하고 세계의 질서를 부여하고.. 더보기
삶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려는 수학자의 태도: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2022) 리뷰 (...) "틀린 질문에서는 옳은 답을 얻을 수 없다" 위와 같은 대사에서 직접적으로 발화되듯 는 상업 영화의 틀 안에서 비교적 명확하고도 친절한 메시지를 주입하지 않는 화법으로 담아낸다. ‘지우’에게 ‘과학관 B103’에서 밤마다 수학을 가르치는 ‘학성’은 자주 “성적에는 관심 없다”라는 말을 한다. 그의 지론은 이렇다. 수학을 잘하기 위해서는 단지 공식만 외워서 그에 문제를 끼워 맞추는 것으론 한계가 있다. 문제를 골똘히 들여다보고 고민해야 하고, 사랑을 하듯 문제와 숫자를 가까이 두고 살펴야 한다. 이런 장면이 있다. 대뜸 칠판에 직각 이등변 삼각형을 그리는 ‘학성’. 높이는 ‘6’이고 밑변의 길이는 ‘10’이다. 이때 넓이는? 넓이를 구하는 공식에 의해(6*10/2) ‘지우’는 30을 답하고 ‘학.. 더보기
룰루 밀러의 논픽션 혹은 에세이 혹은 전기 혹은 서평,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Why Fish Don’t Exist, 2021)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게 찾아온 혼돈에 뒤흔들리고, 내 손으로 직접 내 인생을 난파시킨 뒤 그 잔해를 다시 이어 붙여보려고 시도하고 있을 때, 문득 나는 이 분류학자가 궁금해졌다. 어쩌면 그는 무언가를, 끈질김에 관한 것이든, 목적에 관한 것이든, 계속 나아가는 방법에 관한 것이든 내가 알아야 할 뭔가를 찾아낸 것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가당치 않게 커다란 믿음을 가져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자기가 하는 일이 효과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전혀 없을 때에도 자신을 던지며 계속 나아가는 것은, 바보의 표지가 아니라 승리자의 표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18쪽) ⠀ 영화도 메시지가 좋다고 해서 그 작품도 좋은 건 아닌 경우가 많다. 오히려 좋은 의도일수록 그걸 잘 전달하기 위한 작법과.. 더보기
영화 '피그'(2021) “이 냄새를 맡아보시오.” 검은 빵 덩어리를 잘라내면서 빵집 주인이 말했다. “퍽퍽한 빵이지만, 맛깔난다오.” 그들은 빵냄새를 맡았고, 그는 맛보라고 권했다. 당밀과 거칠게 빻은 곡식 맛이 났다. 그들은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었다. 그들은 검은 빵을 삼켰다. 형광등 불빛 아래에 있는데, 그 빛이 마치 햇빛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이른 아침이 될 때까지, 창으로 희미한 햇살이 높게 비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레이먼드 카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대성당』 (문학동네, 2014) ⠀ 요리에는 취미로도 소질로도 거리가 멀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음식에 관해서라면 레이먼드 카버의 위 대목을 떠올린다. 원제가 ‘A Small Good.. 더보기
넷플릭스 영화 '모럴 센스'(2022) 여러 가지의 이유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은 난이도를 요구하고 많은 장벽에 부딪히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이 서로 '우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해 상기한다. 비록 관계에 있어서 완전히 대등하거나 평등한 것, 은 가능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해도 그것을 건전하게 지속 가능한 것으로 이끄는 힘은 용기를 내는 마음에 그치지 않고 존중하는 자세에서 비롯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100여 년이 다 된 로맨스 장르 계보에, 여전히 새로운 영역이 남아 있다는 걸 (2022)는 소재 자체가 담을 수 있는 자극성에 골몰하지 않고 차이, 다양성, 존중, 배려와 같은 키워드로 풀어낼 수 있는 대중적인 스토리텔링에 충실하면서 보여준다. 더보기
영화 '나일 강의 죽음'(2022) (...) ⠀ 의 '에르큘 포와로'는 마치 눈 감고도 (코난에 의해 졸면서) 모든 걸 꿰뚫는 '명탐정 코난' 속 유명한 탐정처럼 어느 순간 갑자기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모든 걸 한방에 해결하는 인물이 아니다. 영화 속 범죄에는 사랑이라는 테마가 중요하게 개입되는데, '포와로'는 사랑에 대한 자기 경험을 토대로 용의자들의 감정에 대해 추리하기도 하고 현재 진행형으로 벌어지는 영화 속 일련의 사건들의 주변인으로서 직접 발로 뛰며 스카프, 권총 등 단서들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관계된 자들을 한 명 한 명 직접 심문하고 그들의 알리바이를 파헤치며, 어느 순간에는 자신의 아픈 과거를 떠올리게 되기도 한다. 요컨대 그는 천재적인 두뇌와 예리한 판단력을 앞세워 모든 걸 일거에 해결하는 초월적인 인물이 아니라 관객.. 더보기
류근, 祝詩 내가 당신을 귀하게 여겼던 것만큼 누구에게든 귀한 사람으로 대접받길 바랍니다 내가 당신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여겼던 것만큼 누구에게든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아지길 바랍니다 내 가장 아픈 곳을 밝혀 사랑한 것만큼 누구에게든 가장 깊은 사랑의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지나간 날들이 당신에게 슬픔의 기록으로 남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고통과 자기 연민의 도구로 쓰이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아무런 기억도 추억도 아니길 바랍니다 어떤 계절에 내린 비 어떤 가을날에 떨어진 잎사귀 하나쯤의 일로 고요하게 지나간 날들이길 바랍니다 당신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지는 않겠습니다 내 기도가 들리지 않는 세상에서 당신은 당신의 기도로 나는 나의 기도로 서로의 삶을 살아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살아서 다시는 서로의 .. 더보기
넷플릭스 영화 '돈 룩 업'(2021) 작중 '민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제니퍼 로렌스)의 대화 중 인용되는 말처럼 "잃는 것도 있어야 얻는 것도 있다지만 우리가 잃는 것은 시간뿐이기를"(The Mills Brothers, 'Till Then') 바라지만 우리가 잃는 것은 시간만은 아니어서 어떤 판단과 결정은 삶과 터전 자체를 앗아가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 일상에서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되새기게 하는 마지막 장면과 달리 (2021)은 그것들이 지켜질 수 있다고 낙관할 생각이 없다. 인류의 행복이 공동의 선의와 노력, 희생으로 지켜질 수 있다고 믿는 영화와 믿지 않는 영화로 나눌 수 있다면 은 당연히 전자인데, 그 소재와 배경만 다를 뿐 애덤 맥케이 감독 영화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 정치, 경제, 언론 등 현대 사회의..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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